팔만대장경판의 보존을 위한 제언
(동아일보. 93.11.12)
우리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속에서 반복된 외침에 따른 참담한 병화를 수없이 겪어면서 도 문화민족으로의 긍지를 세울만한 많은 문화재를 갖고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 다. 그중에서도 팔만대장경은 세계최고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의 명성에 걸 맞게 특히 자랑할만한 문화유산이다. 8만여장에 달하는 그 방대함은 물론 몽고와 처절한 항쟁을 벌리 는 기간에도 오직 외적을 물리쳐야 겠다는 일념으로 경판 한장한장에 세겨넣은 선조의 정성 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함 마저 느끼게 한다.
그동안 대장경 경판의 보존에 관하여 몇 언론매체에서 그 실상을 보도한 바 있고 최근에 는 그 일부가 첫 서울나들이를 하여 국민들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장경을 각판한 경판은 재질이 나무이기 때문에 보존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목재를 공부하는 전문가적 입장에서 팔만대장경 경판의 보존에 관한 몇 가 지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대책을 생각해 보고저 한다.
먼저 대장경 경판의 현재의 상태에 대하여 알아보자. 재료는 자작나무로 만든것으로 구전 되고 있으나 그 방대한 양의 경판을 한가지 수종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도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자라는 돌배나무와 산벚나무로 만들 어진 경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기타 박달나무와 남해안과 섬지방에만 있는 후박나무도 검출되어 여러지역의 나무를 사용한 것이 증명되었다. 경판의 크기는 길이가 58-70cm, 세 로 67cm, 가로 24cm, 두께 3.5cm, 무게 3.5kg에 달하고 원목은 적어도 직경이 50cm이상 의 곧고 우량한 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판의 양단에는 손으로 잡고 인쇄하거나 운반할수있는 마구리가 있고 마구리와 경판은 청동이나 구리로 만들어진 金具로 고정되어 있다. 경판의 글자가 각인된 부분은 인쇄과정의 먹물이 말라 먹의 층이 형성되어 있고 경판 에 따라서는 주위에 옻칠이 된것도 있다. 보존환경을 보면 가야산 중턱의 약간 서남향으로 위치한 장경전은 건물의 구조가 중방(中枋)을 중심으로한 유자창의 크기를 조정하고 밑바닥 은 여회라는 일종의 조개껍질을 다져넣어 바람이나 습도가 비교적 일정할수 있는 구조를 갖 고 있어서 경판의 보존에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우리 선조들의 슬기로움에 다시한번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눈을 돌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조상의 이 위대한 유물을 과연 자손만대에 물 려줄만큼 완전한 보존 및 보호를 하고 있는지 깊이 한번 생각해보고 만에 하나 불비한 점이 있다면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누구나 쉽게 느낄수있는 것은 화재에 대한 대응책이 전무한 현실이다. 경판의 장수 가 81.340장, 추정무게가 자그만치 285톤에 달하는 잘 건조된 목조경판이 판가에 층층이 적당한 간격으로 보관되어 있고 산중턱의 적당한 바람이 항상 불고있는 장경전의 환경조건 은 화재에 지극히 취약하다. 따라서 화재예방과 만약의 화재에 대비하여 긴급진화할 수 있 는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히 세워져야 한다. 아울러서 관람객의 통제도 꼭이루어져야 할것이다. 왠만한 외국의 문화재를 관람하기 위하여는 사전예약제도에 의한 철저한 통제를 하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의 예만 보더라도 석조물로서 화재에 대한 위험은 거의 없는 석굴암이 관람객의 출입금지로 보존되는 사실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관리가 소홀하지 짐작할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새 장경전을 건축하여 경판을 옮겨보관하는 것이다. 새 장경 전은 화재예방시설을 완벽하게 갗추고 항온항습시설을 설치하여 수분변동에 따른 경판의 손 상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찰측이나 관계당국의 시각은 1974년경에 지금 의 장경전 옆에 신축한 새 장경전이 건물설계의 잘못과 옮겨간 경판의 관리에 대한 기초조 사를 소홀히 하여 실패한 예를들어 매우 부정적이다. 그러나 20여년전의 새 장경전은 목재 보존학자의 참여없이 단순히 화재에 안전하게 보관한다는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에서 수분변 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목질유물이 오히려 구 장경전보다 보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는 당시의 실패를 거울삼아 전문가로 이루어진 충분한 기초연구와 검 토를 거쳐 목조건물의 화재취약성을 감안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새장경전의 건축방안을 추 진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경판이 목재부후균을 비롯한 미생물의 침해에 안전한가를 구명하는 일이다. 장경전 은 통기성을 중히 여겨 유자창을 앞뒤로 설치하고 있으므로 경판이 바같공기에 완전히 노출 되어 있다. 따라서 인각한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쌓이며 특히 관람객이 다니는 바깥쪽 통로는 더욱 두껍게 쌓인다. 먼지층의 밑부분은 계절에 따라서는 높은 함수율을 갖 게 되며 목재부후균이 살수있는 최적의 조건을 갗추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각부 부터 차츰 썩어들어갈 우려가 있다. 현미경관찰로서 이부분의 상태를 먼저 확인한 다음 먼지속의 미생물을 배양하여 그 종류를 구명하고 이에 필요한 방제 대책을 세워야 할것으로 생각된 다.
또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금구(金具)를 고정하기 위하여 사용한 철못의 부분이다. 철 못은 대기중에서 산화철화하여 수분을 계속 흡습하고 부분적으로 함수율이 높아진 철못주위 부터 목재부후균의 침해는 차츰 확대된다. 이와같은 현상은 상당한 숫자의 경판에서 직접 확인할수 있었으며 방치할때는 경판손상의 중요한 원인이 될것으로 우려된다.
결론적으로 팔만대장경의 안전한 보존을 위하여는 적절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본다. 우선 전문가에 의한 경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화재예방시설 의 완벽한 설치와 주기적으로 먼지와 먹딱지를 제거하는 관리방법의 개선이 필요하고 장기 적으로는 한정된 경판만 일반공개하고 새 장경전을 지어 영구보존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 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설계하여 건조한 장경전의 건조양식과 경판보관방법이 너무나 합리적이 어서 750여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도 잘 보존되었으니까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것이라는 안 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조상의 유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존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줄 것인지에 대하여 진지한 검토가 요구되는 시점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