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군 남장리 출토 목관재의 수종분석
경북대학교 명예교수 박상진
1. 머릿말
죽은 사람의 영원한 안식처인 무덤을 다듬는 일에 예나 지금이나 지극한 정성을 쏟는다. 땅을 파고 그냥 묻은 널무덤에서 출발하여 석관과 옹관(甕棺)을 거쳐 목곽(木槨)과 목관(木棺)으로 시신을 감싸게 되었다. 무덤에는 당시의 문화가 모두 집결되어 있다. 평소에 사자가 사용하던 신변잡품과 장신구가 들어 있고 시대를 알 수 있는 명문과 책이라도 출토된다면 그야말로 고고학의 보고이다. 즉 무덤은 해당 시대의 총체적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압축 파일이나 마찬가지이다.
고분에 들어 있는 목관도 그 파일 중의 하나이다. 나무는 종류마다 자람 특성에 차이가 있고, 기후 환경에 따라 나타나는 종(種)이 다르며, 나아가서는 같은 수종이라도 그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고유한 생장 패턴을 가진다. 과거 조상들은 한반도에 풍부한 목재자원을 바탕으로 생활용품을 비롯한 거의 모든 곳에 목재를 가장 널리 재료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발전에 따른 활발한 개발 사업으로 조상의 얼이 깃든 수많은 매장목질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목질유물은 같은 장소에서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을 자라면서 당시의 환경정보를 그대로 갖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유기체(有機體)이다. 수억 만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목재는 1년마다의 반복된 주기로 생장기와 휴지기를 교대로 한 나이테가 형성된다. 이러한 목재의 세포조직을 현대의 발달된 기술로 정밀 분석하여 고고학적 해석에 필요한 기초정보를 제시하는 시도를 필자는 오랫동안 하여 왔다.
이 보고서는 충남 홍성군 홍성읍 남장리 국민주택 부지에서 출토된 목관재의 수종 분석한 결과이다.
2. 재료 및 방법
남장리 목관의 시편은 30점으로써 길이가 1cm~10cm로 유물의 상태에 따라 다양한 크기로 채취하였다. 수종분석은 시편의 크기와 부후상태를 감안하여 PEG embedding과 Epoxy embedding을 병행하였다. 이들 시편은 크기에 따라 부후가 덜 진행된 부위에서 절단하였으며 프레파라트 제작 후 광학현미경을 이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주사전자현미경 관찰을 하였다. 시편에서 부후가 덜 된 부분을 골라 장방형(1×1×1cm)으로 일단 트리밍을 한 후 시편은 물로 충분히 씻어 내었다. 60℃(dry oven)에서 PEG1500, (PEG1500과 PEG4000의 1:1혼합) 그리고 PEG4000에 각각 1일씩 침지한 후 냉동실에서 경화하여 블록으로 만들었다. 횡단면을 정확히 찾아내고 더 작게 트리밍하여 각 블록은 Slide microtome으로 두께 15~20㎛로 횡, 방사, 접선 단면별 각각 얇은 절편을 만들었다. Gly-egg로 코팅된 슬라이드글라스 위에 고정하였다. 절편의 PEG4000은 물로 제거하였으며 사프라닌으로 염색하여 건조 후 캐나다발삼 수지를 이용하여 커버글라스를 덮어 봉입하였다.
주사전자현미경 관찰은 PEG처리로 절편을 만든 나머지 시편을 0.1cm크기의 작은 블록을 만들어 이온 코팅하고 관찰하였다.
3. 분석 결과
30점의 시편의 분석 결과 표1과 같이 모두 소나무(Pinus densiflora)임이 밝혀졌다. 재료가 모두 같은 성격의 목관이므로 다른 부재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묘 |
시료번호 |
유구대상번호 |
시료수 |
분석수종 |
홍성군 남장리 회곽묘 |
34호 |
목관뚜껑 |
1 |
소나무 |
34호 |
힁대 |
1 |
소나무 |
34호 |
남쪽 벽재 |
1 |
소나무 |
34호 |
우측벽 관재 |
1 |
소나무 |
34호 |
북쪽 벽재 |
1 |
소나무 |
34호 |
좌측 벽개 |
1 |
소나무 |
34호 |
바닥재 지판 |
1 |
소나무 |
홍성군 남장리 회곽묘 |
133호 |
우측 판 |
1 |
소나무 |
133호 |
상(上) 벽재 |
1 |
소나무 |
133호 |
하(下) 벽재 |
1 |
소나무 |
133호 |
왼쪽 부재 |
1 |
소나무 |
133호 |
지판 |
2 |
소나무 |
홍성군 남장리 회곽묘 |
142호 |
힁대 |
1 |
소나무 |
142호 |
우측 판 |
1 |
소나무 |
142호 |
천판 |
1 |
소나무 |
142호 |
지판 |
1 |
소나무 |
142호 |
좌측 판 |
1 |
소나무 |
홍성군 남장리 회곽묘 |
149호 |
좌측 판 |
1 |
소나무 |
149호 |
149-① |
1 |
소나무 |
149호 |
149-② |
1 |
소나무 |
149호 |
149-③ |
1 |
소나무 |
149호 |
149-④ 상 |
1 |
소나무 |
149호 |
149-⑤ |
1 |
소나무 |
149호 |
149-⑥ |
1 |
소나무 |
149호 |
149-⑦ 상 |
1 |
소나무 |
149호 |
지판 |
1 |
소나무 |
149호 |
우측 판 |
1 |
소나무 |
149호 |
천판 |
1 |
소나무 |
합계 |
- |
- |
30 |
- |
나무의 재질을 분석하여 수종을 식별한 현미경적인 특징은 아래와 같다.
횡단면에서 보면 침엽수임을 알 수 있는 조직인 가도관, 방사조직, 수지구가 분포하고 있었다. 다각형의 가도관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고, 나이테 경계는 명확하며 한 연륜을 보았을 때 세포벽이 비교적 두꺼운 만재부가 많이 분포하여 조만(早晩)재 이행이 급함을 알 수 있었다. 수지구(樹脂溝)는 비교적 두껍게 보였으며 파괴되어 거의 형태가 없는 에피델리얼(epithelial)세포가 관찰되었다.
방사단면 상에서는 가도관의 종단면과 유연벽공(有緣壁孔), 그리고 분야(分野)벽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종단면에 보이는 가도관의 내측에서 유연벽공은 단열(單列)을 이루고 있었고 축방향으로 달리는 가도관과 방사유세포(放射柔細胞)가 교차하여 만들어진 직교분야에 나타난 벽공으로 분야벽공이 존재하는데, 외형이 창문모양을 하고 있는 창상(窓狀)의 분야벽공이 관찰되었다. 방사조직의 위쪽 방사가도관에서는 톱니모양의 거치상빗후(鋸齒狀肥厚)가 관찰되었다.
접선단면상에서는 방사조직의 횡단면이 관찰되며 대다수가 1열의 단열방사조직이며 수평수지구가 존재하는 방추형(紡錐形) 방사조직이 함께 분포하였다. 방추형 방사조직은 대부분이 파괴되어 방추형의 모양세만 갖추고 있었다.
침엽수의 정상수지구는 소나무과(科)의 소나무속(屬), 잎갈나무속, 가문비나무속, 미송속, 그리고 Keteleeria가 있다. 하지만 미송속은 도입수종이며 Keteleeria는 수직수지구만 존재하며 중국에서만 분포한다. 이중 에피델리얼 세포가 박벽(薄壁)이며 방사가도관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은 소나무속이다. 소나무속은 크게 경송류(hard fine; 소나무류)와 연송류(soft fine; 잣나무류)로 나눌 있는데, 본 시편은 조만재의 이행이 급하였고 방사가도관상에서 평활한 연송류와는 달리 거치상비후가 발달하였으므로 경송류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분야벽공의 형태가 경송류 중 창상벽공을 나타내므로 소나무류임이 확인되었다.
소나무류의 수종에는 소나무와 곰솔(해송)이 있다. 이 두 수종의 세포 특징은 같으나 곰솔은 주로 해안에만 자라며 발굴 터가 육지 쪽으로 조금 들어와 있으며, 일반 소나무보다 재질이 떨어지므로 이 목관에 사용된 나무는 소나무로 최종 추정하였다.
소나무는 북부의 고원 지대를 제외한 전국에 자라는 상록침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35m, 지름 1m에 달한다. 나무껍질은 오래되면 아래 부분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윗부분은 붉은색이므로 적송(赤松)이라 하다.
목재는 재질이 연하고 부드러우며 강인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건축용재, 일반용재, 펄프재 등으로 널리 쓰인다. 솔잎, 내피, 송진, 꽃가루는 식용한다. 소나무의 사용 예는 건축재, 선박재, 가구재, 조각재 등 일일이 들 수 없을 만큼 많으며 우리의 문화재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4. 고찰
홍성 남장리에서 출토된 목관의 수종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소나무이었다. 예부터 사용된 목관재의 수종을 잠시 알아본다. 낙랑시대와 삼국초기에 관재로 쓰인 나무는 중국 양자강 남부에 자라는 넓은잎삼나무, 주목, 굴피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등이다. 백제 능산리 고분 관재의 비자나무, 무령왕릉 관재의 금송, 천마총의 느티나무, 금관총의 일부 녹나무, 창녕 가야고분의 녹나무 등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당시에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소나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화장이 성행하여 분묘가 축 조되지 않은 탓에 관재에 관하여 우리가 참고 할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임금님부터 사대부, 지방토호까지 관재로 쓰인 나무는 거의 소나무로 한정된다. 나무의 재질만으로 본다면 통일 신라 시대 이전에 주로 이용된 이런 나무들이 소나무보다 훨씬 우량한 나무들이다. 관재로서 갖추어야할 잘 썩지 않은 성질 및 적당한 향기와 희귀성 등을 모두 갖추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오랫동안 산림을 제대로 가꾸어오지 않은 탓에 이런 우량 나무들을 잘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산에서 쓸 만한 나무로는 소나무 밖에 남지 않았다. 소나무는 고대국가 때 쓰인 이런 나무들과 재질은 못하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소나무가 가장 좋은 나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관재로 비교적 구하기 쉬운 나무로 소나무가 널리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소나무는 관재, 조선목재, 건축재 등 쓰임이 많고 자원은 자꾸 줄어들므로 일찍부터 소나무 보호방안을 세웠다. 경국대전에 송목금벌(松木禁伐)을 두어 일반 백성들은 소나무를 아예 쓰지 못하게 하고 잡목(雜木)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조선후기로 오면서 송정(松政)은 문란해져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지만 규제는 그대로 유지 되었다.
남장리 목관이 소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은 적어도 양반계급이상의 조선시대 분묘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1. 박상진, 이원용, 이화형, 목재조직과 식별, 향문사, 1987.
2. 박상진, 의창 다호리 유적 출토 목재의 수종. 국립박물관 고적조사보고(휴암리). 22. 227 - 236, 1990.
3. 이필우, 한국산목재의 구조 - 현미경적 해부- , 정민사, 1994.
4. 박상진, 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 김영사, 265, 2004.
5. Yamabayashi,H. Identification of korean woods. Bull. Govt. Forest Exp. Sta. 21 : 1-456, 1938.
6. 이창복, 원색 대한 식물도감, 향문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