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 출토 목관재의 수종
(보존과학회지 2권. 93. 요약)
본 연구는 불교가 성행한 三國時代 中期 및 高麗時代의 火葬이 성행하여 분묘가 축 조되지 않은 시대를 제외하고 原三國時代부터 李朝中期의 民墓를 포함한 한반도의 주요 고분의 관재에 대하여 목재조직학적인 방법으로 수종을 식별하고 재질을 구명 하여 고고학적 및 생태학적인 의미를 검토코저 하였다. 목질유물 특히 관재의 경우 수침지나 극히 습한 지역이 아니면 보존 될수없으므로 관재만으로 고고학적인 의의 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특수한 수종이 검출되는 경우는 그 의미를 되새겨 볼수 있을 것이다.
식별된 수종은 朱木, 소나무, 金松의 針葉樹 3종과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뽕나무, 오리나무, 굴피나무의 闊葉樹 6종이다.
주목은 평양부근의 토성리에 산재하고 있는 木棺墓와 土管墓中 오야리 19호 고분의 목관 및 목곽재에서 검출되었으며 목곽의 일부 수종은 졸참나무류로 판별되었다. 주 목은 우리나라의 중북부지방 일부 고산지대에 분포하는 高山性 수종이며 졸참나무도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는 비교적 흔한 수종으로서 두 수종 모두 한반도에 분포하는 수종이다. 이는 관재의 수종이 중국남부에만 분포하는 넓은잎삼나무(Cunninghamia lanceolata)라고 하는 日人들의 報告4)와는 다르고 또 이 수종의 분포지역이 楊子江南部인 점을 들어 樂浪과 중국남부지방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은 물론 지배계층의 중 국과의 관련설을 확인하는 증거로 들고 있다
첫째는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자료에 언급하지 않았든 주목이 구분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넓은잎삼나무가 낙랑고분관재의 主樹種이었다고 볼수는 없을것 같다. 또 넓은 잎삼나무의 재질은 比重이 낮고 强度가 약하며 잘 썩는 목재이므로 관재로 적합한 수종이 풍부한 당시에 구태여 중국남부에서 일부러 가져다 사용하였다는 것은 논리 적으로도 맞지않은다. 그렇다면 낙랑고분 관재의 넓은잎삼나무설은 단순한 착오이거 나 아니면 사실왜곡을 위한 의도적인 경우도 생각할 수 있겠다. 두번째는 거대한 판 재를 제작하기 위하여 톱, 대패를 비롯한 발달된 木材加工工具가 사용되었다는 사실 이다. 이는 시기적으로 거의 동시대인 다호리 가야고분의 관재가공기술과 연계하여 본다면 우수한 鐵器文化가 존재하였다고 볼수있다. 세번째는 산림생태학적인 측면에 서 주목이 현재와 같이 고산성수종이었다면 당시의 원시적인 운반수단으로서는 下山 集材의 어려움이 크므로 산록부등 보다 저지대에 분포하지 않았나 유추해 볼 수도 있다.
金松은 현재 일본남부에만 분포하는 수종이므로 이 수종이 百濟 武寧王陵의 관재로 사용된 것은 三國史記등에 기록된 武寧王의 행적을 미루어 볼때 일본과의 관계를 유 추하는데 주요한 의미가 있다15). 무령왕릉에 사용한 관재는 일본남부의 어느 지방에 서 벌채하여 원목상태로 혹은 판재상태로 粗加工하여 현해탄을 건너 금강을 따라 水 上으로 운반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재로 쓸수있는 국산수종이 상당히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굳이 일본에서 금송을 가져다 쓴것은 일본으로 부터의 朝貢性格인지 아니면 다른 역사적의미가 있는지 등은 타 연구결과에 기대하여 본다.
한편 이 수종이 왕릉의 축조 당시인 5c전후 한반도에 과연 분포하지 않았는지를 검 토해볼 필요성이 있다. 이 문제는 여러 측면에서 조망해 볼수 있겠으나 우선 금송은 수형이 아름다워서 현재에도 高級庭園樹로 쓰이고 있으므로 역사적기록에서 造景植 物의 종류를 찾아보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三國史記, 三國遺史, 東國通鑑등 史錄에 등장하는 조경식물의 종류를 조사한 결과3)에 의하면 금송은 전혀 기록에 나 타나지 않고 있다. 또 왕릉의 축조당시의 粗惡한 목재가공기술로 보아 관재는 수많은 임목중에서 곧고 잘자란 우량개체를 선택벌채하였을 것이므로 비교적 큰 면적에 걸 쳐 흔히 자라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같이 대면적의 산림이 불과 1600여년 사 이에 氷河期와 같은 극단적인 기후 변동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또 각종 花粉分析의 결과에서도 한반도의 금송은 보고된 바 없다. 따라서 무령왕릉이 축조되던 시기에 금송이 한반도에는 분포하지 않았으며 원산지인 일본에서 운반하여 사용한것으로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다호리의 가야고분에서 관재로서 잘쓰지 않는 상수리나무를 사용한 것은 다음 몇가 지 점에서 극히 흥미롭다8,14). 관재의 수종으로서는 우선 대경목이어야 하고 가공이 용이하여야 하며 잘썩지 않은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 조건에 적합한 수종 은 대부분 침엽수재이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출토된 몇 관재에 대한 수종식별에서 상수리나무가 알겨진 것은 처음이다. 다호리 1 호분 상수리나무 목관의 경우 크기가 240cm, 너비 85cm, 지름 65cm의 크기로서8) 가공전의 재료는 적어도 직경 1mm 이 상의 대경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목재의 比重은 0.8 전후로서 무겁고 단단하여 운 반이 어려울 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 가공이 어려운 대표적 수종이다. 이 목관의 가공 방법은 원목을 길이로 兩切하여 구유형으로 중앙부를 파낸 형태인데 曲面으로 파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예리한 도끼 혹은 자귀를 사용하였다고 추 정된다. 이는 刃物의 강도가 극히 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므로 상당히 발달된 製鐵 術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느티나무는 時代와 地域이 다른 고분에서 모투 출토 되었으며 다른 목질유물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오늘날 이 수종은 아름다운 樹形 때문에 조경수로서만 널리 알려져있으나 오랜 옛날부터 곧고 직경이 큰 느티나무가 한반도에는 풍부하게 자란 것으로 보인다. 잘 썩지않고 가공이 쉬우며 무늬가 아름다운 목재이므로 관재로서 적 합하였다고 생각한다. 느티나무는 大徑優良木이 차츰 줄어들어 후대에 와서는 가구 재, 기구재등 다른 용도로 쓰이고 관재의 용도는 소나무로 대치된 것이 아닌가 추정 해 볼수 있다.
소나무는 재질특성이나 지금의 광범위한 분포상태로 보아서는 고대에도 관재로서 널리 쓰일 것으로 생각 할 수 있으나 三國以前의 관재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이는 두가지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소나무자원은 풍부한데 주목, 느티나무, 참 나무등 관재로 더 재질이 우량한 수종이 흔하였기 때문과 소나무자원 자체의 不足을 상정할 수 있으나 안압지 고선, 최근 출토되는 皇龍寺趾의 여러 목질유물이 소나무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前者의 경우로 생각된다.
굴피나무는 현재는 직경 30-40cm 정도의 비교적 크게 자라지 않고 또 흔치도 않아 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활엽수이다. 그러나 완도 장좌리 청해진 유적지의 목책의 일 부 및 완도의 고려초 화물운반선에서도 굴피나무가 검출된 점으로 미루어 옛날에는 이 보다 훨씬 큰 나무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재로서의 특별한 장점은 갖고 있 지않으나 비교적 단단하고 강하면서 가공이 쉬운 나무이다.
오리나무는 수종의 특성상 관재로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사용이유가 불명하며 산뽕 나무는 당시의 주요한 산업이었든 양잠과의 관계를 생각 해 볼 수 있다.
ABSTRACT
This study was carried out to identify the species of wooden coffins excavated from ancient kings, tombs of Nakrang and Pro-Three-Kingdoms to the beginning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and the private tombs of the middle stage at the Chosun dynasty. The species of wooden coffins were identified as three softwoods(Taxus cuspidata, Sciodopitys verticillata, Pinus densiflora) and six hardswoods(Quercus acutissima, Quercus serrata, Zelkova serrata, Platycarya strobilarea, Alnus japonica, Morus spp.).
Taxus cuspidata, wooden coffins of Nakrang kings, tombs, is distributed through Korea. However in previous examination it was known as Cunninghania lanceolata, native species in south China. Sciodopitys verticillata used as a wooden coffin of King Muryung,s tomb was native to Japan. It was a material evidence proving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Paekche Kingdoms and Japan in those days. Pinus densiflora was species of wooden coffins excavated from private tombs in Chosun dynasty, which was not found out Pro-Three-Kingdoms and Three-Kingdoms.
Quercus accutissima was used for making a trough shape wooden coffins at Daho-ri ancient tombs and Quercus serrata was used a outer wooden coffin of Nakrang kings' tombs. An adamant iron mongery might be used to manufacturing a trough shape wooden coffin. This indicates that a developed iron-manufacturing technics existed in Korea at that time.
Zelkova serrata was used for making wooden coffins of Imdang and Kaya ancient tombs, Chunma and Hwangnam king tombs. Platycarya strobilacea was used for making wooden coffin of Daegok-ri, Alnus japonica for Daho-ri coffins and Morus spp. for Imdang coffins.
본 연구는 樂浪時代와 原三國時代부터 삼국이 定立하는 시기까지의 棺材와 李朝中 期의 民墓를 포함한 한반도의 주요 고분의 출토관재에 대하여 목재조직학적인 방법 으로 수종을 식별하였다. 관재에 사용한 수종은 朱木, 金松, 소나무의 針葉樹 3종과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오리나무, 산뽕나무의 闊葉樹 6종이었다.
朱木은 樂浪古墳 출토관재의 수종이었으며 이전의 조사에서 중국남부 수종인 넓은 잎삼나무로 보고된 것과는 달리 한반도에 널리 분포하는 수종이었다. 金松은 百濟 武 寧王陵에 사용한 관재이었으며 이 수종이 일본 특산수종이므로 당시 백제와 倭國과 의 교류를 증명하는 물적자료이다. 소나무는 李朝時代 民墓의 관재수종이었으며 원삼 국시대 및 삼국시대의 관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는 각각 義昌 茶戶里 遺蹟의 구유형 木棺과 樂浪古墳의 木槨을 구성하는 수종이었다. 특히 구 유형 상수리나무 목관을 가공하기 위하여는 강도가 매우 큰 철기가 사용되었다고 추 정되며 이는 당시 한반도에 발달한 製鐵術이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느티나무는 慶 山 林堂古墳과 東萊 福泉洞 伽倻古墳 및 天馬塚과 皇南大塚의 관재에 사용하였으며 굴피나무는 和順 대곡리 古墳의 관재, 오리나무는 義昌 茶戶里 관재, 산뽕나무는 慶 山林堂古墳의 관재에 사용한 수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