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당고분군 발굴 목질유물의 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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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불교가 성행한 삼국시대 중기 이후 및 고려시대의 화장이 주종을 이루어 분묘가 축조 되지 않은 시대를 제외하고 원삼국시대부터 이조중기의 민묘를 포함한 한반도의 주요 고분의 관 재에 대하여 수종을 식별하고 재질을 구명하여 고고학적 및 생태학적인 의미를 검토한 바 있다. 관재를 비롯한 목질유물은 수침지나 극히 습한 지역이 아니면 보존 될 수 없으므로 출토된 관재 의 재질만으로 고고학적인 의의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으나 자연과학적인 측면에서 본 보조 자료로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관재가 출토된 주요 고분에서 식별된 수종의 예를 들어보자.
1) 낙랑고분 : 평양부근의 토성리에 산재하고 있는 목관묘와 토관묘중 오야리 19호 고분의 목관 및 목곽재에서 주목, 일부 목곽은 졸참나무류로 판별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바로는 중 국남부에만 분포하는 넓은잎삼나무(Cunninghamia lanceolata)가 검출되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었다.
2) 무령왕릉 : 무령왕과 왕비의 관재는 일본남부에만 분포하는 수종으로 알려진 금송이었 으며 일부는 일본삼나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수종이 백제 무령왕릉의 관재로 사용된 것은 삼국사기등에 기록된 무령왕의 행적을 미루어 볼 때 일본과의 관계를 유추하는데 주요한 의미가 있다
3) 의창 다호리 가야고분 : 다호리 1 호분 출토 대형목관은 상수리나무를 양절하여 구 유형으로 중앙부를 파낸 형태인데 이 수종은 비중이 0.8정도의 극히 단단한 나무로서 인물의 강 도가 극히 강하지 않으면 가공이 불가능하므로 상당히 발달된 제철술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일부 목관 편으로 의뢰 받은 시료 중에는 오리나무가 있었으나 이 나무의 특성으로 볼 때 관재로 볼 수는 없었다.
4) 경산 임당고분 : 1988-9년경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의뢰 받은 임당고분 출토 목편은 느티나무와 산뽕나무이었다.
5) 동래 복천동 가야고분 : 철정에 붙어 있는 극소량의 목편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분 석하여 느티나무로 판정하였다.
6) 천마총과 황남대총 : 관재편의 조사에서 느티나무가 검출되었다. 느티나무는 시대와 지역이 다른 고분에서 모두 출토되었으며 다른 목질유물에서도 가구재, 기구재등 광범위하게 쓰 이고 있다.
7) 화순 대곡리 고분 : 관재편에서 굴피나무가 검출되었다. 이 나무는 현재는 직경 30-40cm 정도의 비교적 크게 자라지 않고 또 흔치도 않아서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완도 장좌 리 청해진 유적지의 목책의 일부 및 완도의 고려초 화물운반선에서도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에는 이 보다 훨씬 큰 나무가 많았고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8) 이조시대 민묘 : 불교의 영향으로 생각되나 고려 때는 목관을 사용한 고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시대를 건너 띄어 이조에 들어오면서 매장풍습이 다시 생기고 목관재를 사용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나 왕릉에서 출토된 관재는 박물관에 보관된 것이 없고 민묘로서 시대가 17c전후 인 각기 다른 목관편 3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수집하여 조사한 결과는 모두 소나무이었다.
이상의 관재재질조사에서 검토해 본 것처럼 삼국시대의 초중기 이전에는 소나무재질의 관재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물론 이 결과는 불과 10여기의 시대가 각기 다른 고분의 출토재이고 당시 의 나무의 선호도를 추정할 수 있는 기록이나 믿을 만한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논리의 전개가 무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한정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여 이번 출토된 소나무관재와 연 관 지어 보고자 한다.
소나무는 재질특성이나 지금의 광범위한 분포상태로 보아서는 고대에도 비교적 널리 쓰일 것 으로 생각 할 수 있었으나 삼국이전의 관재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았다. 이는 우선 두 가지 측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당시에 소나무자원은 풍부하였는데 잘 썩지 않고 무늬가 아름다워 관재로서 더 재질이 우량한 주목, 느티나무, 참나무 등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므로 소나 무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두번째는 당시의 임상이 지금처럼 소나무가 풍부한 산림이 아니고 참나무, 느티나무등 활엽수 가 중심이 된 산림의 가능성일 경우도 생각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솔거의 노송도를 비롯한 안압지 출토 목선, 최근의 황룡사지 발굴목재, 고려초기의 완도 침몰선등이 모두 소나무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에도 소나무가 흔히 분포하였 으며 기타 화분분석 등의 결과에서도 소나무의 분포는 충분히 추정할 수 있으므로 전자의 경우 즉 관재를 선정할 때 소나무이외의 수종을 선호한 것으로 해석된다.
언제부터 관재의 재료로서 소나무를 선호하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한반도의 임상은 몽 고란 이후 급격히 황폐화되고 임상이 파괴되면 소나무가 다른 수종보다 잘 자라므로 대체로 고려 중엽에서 말기사이에 활엽수재 임상에서 소나무임상으로 차츰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이조에 들 면서 새로운 궁궐의 축조와 왜구를 막기 위한 선박건조에 필요한 조선재의 요구등 급격한 목재요 구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종은 거의 소나무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소나무자원보호를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은 송목금벌이라든가 봉산제도 등의 이조초기 소나무정책에서도 알 수 있다. 결 국 이조에 들면서 산림이 황폐화한 중에도 삼국시대 이전과는 달리 관재로 쓸 수 있는 우량재는 소나무밖에 없었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결과에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소나무관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조시대 가 아닌가 생각되며 이번의 임당고분군의 관재는 전에 조사한 또 다른 임당고분 관재가 느티나무 와 산뽕나무인 것에 비교하여 본다면 적어도 시대적으로 훨씬 후대의 이조시대고분이 아닐는지 목재 과학적인 입장에서 감히 의견을 밝혀 보는 바이다.
(2)
재료 : 영남매장문화재연구재단에서 발굴중인 경산 임당동의 고분군에서 출토된 목재관재편이며, 고분은 69호분의 1점과 59호분의 각기 다른 부위로부터 8점인 총9점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 관 재편들은 암반으로 구성된 고분의 지하로 유입된 지하수로 인해 혐기적인 환경이 유지됨으로써 유기물질인 목재가 남아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과 : 경산 임당동에서 출토된 고분의 관재를 목재조직학적인 방법에 의해 조사한 결과 조사대 상인 59호분과 69호분의 시편 9점이 모두 밤나무로 식별되었다.
고분관재를 구성하는 수종에관한 연구는 고분이 놓여지는 환경에따라 매우 특수한 조건하에서 만이 관재편이 출토되기 때문에 매우 제약되어져 행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조사 된 고분관재의 수종으로는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삼국시대이전에는 주목, 금송 등의 침엽수재와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산뽕나무, 오리나무, 굴피나무 등의 활엽수가 중점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의 민묘에서는 대부분 소나무재만이 검출되었다.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임당동 고분관재 역시 밤나무라는 새로운 수종이 식별됨으로써 앞으로 보다 다양한 고분관재수종에 대해 추정해 볼 수 있으며 목재를 관재에 사용하는데 있어 어느시기를 기점으로 활엽수재에서 침엽수 재인 소나무로 전환되었을지에 대한 흥미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