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어두리 인양 고선박의 수종
<완도해저유물,1985, 문화재관리국, p130-151>
전남 완도군 약사면 어두리 앞바다에 도자기를 실은 고선박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피조개를 채취하든 잠수사에 의하여 1983년 청자 4점이 순천지청에 신고되면서 부터이고 1984년 3월에서 5월에 걸쳐 문화재관리국의 주관으로 유물과 선체인양을 완료하였다. 약 3만여점의 청자와 청동제 유물, 9점의 목제품를 비롯하여 갑판 부분이 없어진 선체의 상당 부분이 비교적 좋은 상태로 인양되었다. 선박은 고려초기의 서민들이 사용하든 생활도자기를 운반하든 민수선으로서 청자는 고급품이 아니라서 예술적 가치는 적었으나 학술적인 중요성이 있는 유물이었다. 선박은 안압지 목선에 이어 최고(最古)의 해양선박으로서 우리나라 선박사를 구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었다. 필자는 목선과 목제품의 재질조사를 담당하여 얻어진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
수 종 |
사 용 재 료 |
분포지역 |
침엽수 |
소나무 |
선체외판,저판,피삭(皮?) |
전국 |
비자나무 |
저판 |
남해안 |
활엽수 |
상수리나무 |
선체외판, 장삭, 가룡(加龍), 나무망치, 나무연장, 선체저판연목(緣木) |
전국 |
졸참나무 |
선체저판연목, 나무망치자루 |
전국 |
느티나무 |
외판피삭고정목 |
전국 |
굴피나무 |
선체저판연목 |
경기도 이남 |
동백나무 |
목제품 |
남서해안 |
완도 어두리 선박은 도자기를 비롯한 타 분야의 연구에서 고려초기의 선박으로 알려져 있고 신안 앞바다의 중국선박과 같이 외국을 왕래하는 무역선이 아니라 국내의 생필품을 거래하던 선박으로 생각되고 있으므로 인양된 목질유물의 수종은 우리나라의 중부이남과 일본의 혼슈남부 및 구주지방에 분포하는 수종을 중심으로 대조 검색하였하였으며 중국대륙의 남부수종을 참고로 하였다.
구분된 수종은 침엽수로서 소나무와 비자나무, 활엽수로서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동백나무이다.
사용된 부재의 종류별로 보면 선체의 경우 외판, 저판등 기본구조의 대부분이 소나무이고 가룡, 장삭등은 상수리나무이다. 그러나 선체의 저판, 저판연목(底板緣木)은 비자나무, 졸참나무, 굴피나무등이 섞여 있다. 실려있는 목질유물인 목제품 및 나무망치등에서는 동백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가 검출되었다. 이들중 선체의 비자나무와 굴피나무, 목제품에 사용된 동백나무는 남부지방 혹은 남해안에만 분포하는 수종으로 이배의 건조지역과 무역의 범위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현재의 분포지역은 굴피나무가 경기도 이남의 주로 수성암지역이고 동백나무가 해안을 따라 동쪽은 울릉도에서 서쪽은 대청도까지 분포하고 있으며 비자나무는 전북 백양사를 북방한계로하여 남해안 도서지방, 제주도등 주로 우리나라 난대림에 분포하는 수종이다. 따라서 난대수종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선박의 건조지역은 남해안의 큰 강을 끼고 있는 하구(河口)가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특히 비자나무는 재질이 뛰어나 바둑판등 귀중재로 쓰이고 있으나 생장이 느리고 오랫동안 남벌되어 지금은 거의 천연기념물로만 남아 있는 귀중재이나 선박을 건조할 당시에는 저판을 쓸 수 있을 만큼 자원이 풍부하였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굴피나무는 완도의 장보고 유적지 및 화순의 원삼국시대 관재에서도 검출된바 있어서 땅속이나 물속에서 잘 썩지않은 재료로 흔히 사용하였든 수종인 것 같다.
유물의 부후정도를 보면 선체의 표층부에 탄화 처리된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격심하게 연화되어있다. 바다속에서 대부분의 수종은 천공충류 및 갑각류에 속하는 나무좀류등에 의한 직접적인 식해를 받아 곧 소멸되고 장기간 보존될 수 있는 것은 뻘속에 파묻혀 있을 경우 뿐이다. 완도 어두리 선박은 현재 남아 있는 목질유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목재의 셀루로우스 성분을 가해하는 균류에 의하여 셀룰로우스는 거의 없어지고 리그닌만 남아서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나무가 갖는 고유의 단단함은 없어졌다,
한편 선체의 저판은 바같 쪽으로 두께 1mm정도의 흑화된 층이 있다. 이 층은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가도관의 내강면의 凹凸, 유연벽공, 방사유세포의 창상벽공의 형태가 그대로 나타나므로 방부방충목적으로 외판의 표면을 얇게 태운 탄화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000여년 전인 고려초기의 선박에 거의 두께가 균일한 탄화층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우리 선조들은 뛰어난 조선술은 물론 나무를 오래쓸 수 있는 대단히 과학적인 기술을 익히 알고 있었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