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주요 고수종과 쓰임새(建築 36권 4호,92.7)
한반도는 지형적으로 남해안 섬지방의 난대림에서 북쪽의 고산지방의 한대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기후조건이므로 분포하는 나무종류도 1000여종을 넘는다. 이들중 목재로서 가공이용 가능한 수종은 100여종 정도이나 재질이 우수하고 비교적 양적으로 풍부하여 실제로 사용되는 수종은 십수종에 불과하다. 우리의 선조들은 일찍부터 주변에 흔히 분포하는 나무종류에 따른 특성을 잘 살려서 각종 알맞은 생활용구를 제작하므로서 목조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 그러나 한반도의 끊이지 않는 병화로 건축물을 비롯한 대부분의 목조문화재는 소실되어 버렸으므로 선조들이 선호하든 고수종과 그 쓰임새를 알아보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
또 옛 나무의 종류를 단순히 지금과 같다고도 볼수없고 분포지역도 여러환경인자의 변화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므로 한반도의 고수종을 추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으며 고생태학등 관련학문의 영역이 대단히 광범위하다. 따라서 필자가 본고에서 다루고저 하는 것은 출토되는 각종 목조문화재의 재질에 관한 조사를 수행해오면서 수집된 자료와 옛문헌을 중심으로 우리선조들이 즐겨 사용하던 나무에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어디에 쓰였는지를 개략적으로 조감해 보고저한다.
1. 침엽수재
⑴. 은행나무(은행나무과, Ginkgo biloba, 銀杏, 鴨脚樹)
은행이란 열매의 모양이 마치 살구씨 같다고 하여 붙어진 이름이며 중국에서는 잎의 모양이 오리발과 닮았다하여 압각수라고도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의 동양삼국에만 분포하고 약 3억5천만년 전부터 지구상에 터를 잡아온 은행나무는 그와 유연관계가 가까운 친족식물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홀로 남은 가장 외롭고 쓸쓸한 나무이다. 직경이 3 - 4 m, 높이가 40 - 60 m까지 자랄수 있으며 암수가 따로 있고 꽃가루속에는 움직일수 있는 정충을 가지고있는 유별나고 독특한 나무이다.
심변재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으며 나무색은 연한 황갈색을 띤다. 목리는 곧 바르고 조직은 치밀하며 독특한 향기가 있다. 기건비중이 0.55정도로서 강도는 약한 편이나 가공이 용이하여 여러가지 용도로 쓰일수있는 좋은 나무이다. 우리의 산야에 자연분포하지는 않고 모두 한두 그루씩 주로 사찰의 주변에 조림한 것이므로 사용예는 흔치 않고 화암사의 불구(佛具)등에서 볼수있으며 각종 기구, 바둑판, 칠기재등으로의 사용이 추정된다.
⑵. 주목(주목과, Taxus cuspidata, 朱木)
나무줄기가 붉고 심재의 색깔도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주목이라 부르고 본래의 분포지역은 북부 고산지대이나 정원수로 널리 심고 있다. 직경 1m, 높이 17m정도로 자라고 생장이 대단히 느리므로 나이테폭은 일년에 1mm정도에 불과한 균질재가 형성된다. 중앙박물관에 보관중인 낙랑고분의 대형관재가 주목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서는 옛날에는 평지에도 자란것으로 생각되며 크기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크게 자란것으로 추정된다.
기건비중은 0.51정도이나 목리가 곧고 가공하기가 쉽고 붉은색에 광택까지 있어서 관재로 선호하였고 기타 기구재, 건축재등 고급용도로 귀중하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목은 흔히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고 일컬을 만큼 오래살고 또 잘 썩지않으므로 일본 특산의 금송(金松)과 함께 최고급관재로서 알려져있다.
⑶. 비자나무(주목과, Torreya nucifera, 榧子)
우리나라의 남부해안지방과 제주도에 걸쳐 분포하는 난대림 특산수종이다. 지름 1m, 높이 20m까지 잘랄수 있는 큰나무이고 동의보감에 의하면 이 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촌충, 회충, 십이지장충등의 기생추구제약으로도 유명하다. 심재와 변재의 구분이 확실하지 않고 나무의 색깔은 옅은 황갈색이며 생장이 아주 느리므로 조직이 치밀하고 약간의 향기가 있다. 기건비중 0.53정도이며 강도는 약하나 탄력성이 큰 특성을 이용하여 최고급바둑판재로, 내수성이 뛰어나므로 조선용재로 아주 적합하다.
현재는 이 나무가 남해안 및 제주도에서도 희귀수종이며 큰 비자나무가 분포하는 지역은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목재는 전혀 생산되지않은 실정이다. 그러나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세종지리지, 영조실록등에는 비자나무의 분포지역과 조정에 바치는 세공(歲貢)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더 많은 비자나무가 널리 분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1983년 완도 어두리에서 인양된 고려초기의 민수용 화물운반선선체의 저판(底板)일부와 완도 장좌리 청해진 유적지의 목책을 비자나무로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당시 비자나무가 남해안 지방에 얼마나 풍부 하였나를 추정해 볼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⑷. 소나무(소나무과, Pinus densiflora, 赤松, 陸松)
한반도에 역사가 시작되면서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해온 가장 가까운 나무가 소나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솔잎의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고개마루의 소나무사이를 바져나온 삼복더위의 솔바람을 우리는 잊지못하며 노오란 소나무 꽃가루로 만든 송화떡의 감칠맛에 군침을 삼키고 어려운 시절 짙은 갈색의 송피떡 한조각으로 한끼를 때우던 시절이 그렇게 먼 과거만은 아니었다. 또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소나무장작으로 취사와 난방을 하면서 소나무로 만든 각종 기구를 사용하면서 살아왔다.
소나무는 나이를 먹어면 수피가 붉어지기 때문에 적송(赤松)으로, 내륙지방에 주로 분포하므로 육송(陸松)으로 불리워 지기도하며 비슷한 수종인 곰솔이 수피가 검기 때문에 흑송(黑松)으로, 해안지방에 분포하므로 해송(海松)이라 불리워 지는 것과 대비된다. 소나무는 높은산의 꼭대기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어느곳에도 분포하며 직경 2m, 높이 35m가지 자랄수있는 큰 나무이다. 목재는 심변재의 구분이 비교적 뚜렷하고 심재는 적갈색을 띤다. 기건비중이 0.50정도로서 강도가 큰 편은 아니나 쉽게 구할수 있고 가공이 간편하며 건조가 잘되고 특히 물속이나 습기가 많은 장소에서도 쉽게 썩지 않은 성질이 있다.
삼국사기 애장왕조에 추위 때문으로 얼어죽은 소나무에 대한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이보다 훨씬 전부터 소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친근한 나무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때에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고려사(高麗史), 동사강목(東史剛目)등의 사서에 소나무보호에 대한 기록이 있어나 강력한 소나무 보호정책을 편것은 이조에 들어와서이다. 이조의 개국과 함께 새도읍지에 궁궐을 신축하므로서 우량한 재질의 소나무는 대량으로 벌체되고 해군력 강화를 위하여 군선재로서도 많은 소나무가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나무재에 대한 급속한 수요창출로 크게 부족을 느끼지 않던 고려때와는 달리 공급이 부족하므로서 이조 초기에는 강력한 소나무보호정책이 필요하게 되었다. 조선조의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송목금벌(松木禁伐)이라는 조항으로서 소나무의 벌체를 규제하고 있었고 세조실록에는 군선에 쓸나무가 부족하므로 관가나 양반의 집도 우량소나무의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였고 서민의 집은 아예 잡목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한편 세종때는 우량소나무가 분포하는 지역의 보호를 위하여 땔나무, 화전등을 금지한 금산(禁山)지역을 전국에 200여곳 정하고 장부에 기록하여 엄하게 규제하였다 한다. 그러나 조선조의 소나무 보호정책은 군선의 제조기법이 낙후되어 수명이 너무 짧고, 화전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으며 송정(松政)의 비효율성등으로 조선말기에 오면서 우리나라의 우량소나무는 차츰 고갈되었다. 이는 오늘날 일부 산간지방과 잘 보호된 지역의 소나무를 제외하면 꼬불꼬불하게 자라는 볼품없은 나무로 전락하는 원인(遠因)이 되었다. 소나무에 대한 이조시대의 건축재사용 제한은 주요 사찰의 건축재가 무량사 극락전의 기둥의 예에서 볼수있는 바와 같이 젓나무와 느티나무 및 상수리나무등의 잡목을 사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것 같다. 소나무의 사용예는 건축재, 선박재, 가구재, 조각재등 일일이 들수없을 만큼 많으며 목조문화재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크다.
⑸. 젓나무(소나무과, Abies holophylla, O木, 杉)
우리나라 중북부의 계곡에서 산복부까지 하늘을 찌를듯이 곧고 바르게 자라는 침엽수의 대부분은 젓나무이다. 지금은 일부 사찰이 있는 계곡에만 겨우 보호되어 있으나 동사강목에 벌써 젓나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훨씬 많은 자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옛 문헌에는 젓나무와 가문비나무를 대부분 삼(杉)으로 기록하는데 이는 일본삼나무와 같은자를 쓰므로 혼동하기 쉽고 일부 사학자들이 한반도에도 일본삼나무가 널리 분포하였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심변재가 거의 구분되지않고 나무색깔이 황백색의 옅은 색이며 기건비중이 0.34정도로 가볍고 연하다. 가공이 쉽고 곧고 긴나무를 얻을수있으므로 건축재로 적합하며 무량사 극락전 기둥등의 건축재로 사용한 예를 볼수있다.
2. 활엽수재
⑴. 굴피나무(가래나무과, Platycarya strobilacea)
이 나무는 현재의 분포지역은 경기이남이며 높이 15m, 직경 60cm 정도의 비교적 크게 자라지 않고 또 흔치도 않아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활엽수이다. 그러나 완도군 장좌리에 있는 청해진 유적지의 목책의 일부가 이 나무로 만들어 졌고 원삼국시대의 화순대곡리 고분에서 출토된 대형목관 및 완도의 고려초 화물운반선에서도 굴피나무가 검출된점으로 미루어 과거에는 이 보다 훨씬 큰 나무가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심변재의 구분이 비교적 확실하고 심재는 회갈색을 나타내고 기건비중 0.70정도로서 비교적 단단하고 강하면서 가공이 쉬운 나무이다. 나무의 특성과 출토된 예로 보아 옛날에는 건축재, 기구재등 우리의 선조와 비교적 가까웠던 나무이었으나 우량재만 집중적으로 벌채이용한 탓으로 지금은 재질이 좋지못한 나무가 일부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⑵. 오리나무(자작나무과, Alnus japonica, 赤楊)
오리나무는 저습지나 계곡부의 비교적 토양수분이 풍부한곳이라면 전국 어디에서나
자랄수 있고 높이 25m, 지름 1 m 정도까지 달한다. 지금은 오리나무가 그다지 흔치 않으나 옛날에는 광범위하게 분포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약 4-5천년전에 형성된것으로 알려진 일산아파트 신축지역의 토탄층에서 출토된 목재의 약 70%가 오리나무이었으며 안압지의 화분분석에서도 오리나무는 우점수종이었다. 기구재로 사용된 예는 의창 다호리 가야고분의 칠기재에서 오리나무가 검출된 바있다.
기건비중 0,53정도이며 심변재의 구분이 활실하지 않고 심재는 회갈색이나 차츰 적갈색으로 변화된다. 압축강도 420 kg/cm2, 인장강도 450kg/cm2, 휨강도 420 kg/cm2 정도이고 쓰임새는 건축재, 기구재, 가구재등이 알려져 있고 특히 나막신재로 유명하다.
⑶. 자작나무(자작나무과, Betula platyphylla var. japonica, 白樺)
북부지방의 추운 고산지방에 새하얀 수피가 다른 수종을 압도하듯이 독특한 모양을 가지는 나무이다. 이 흰 수피는 좀처럼 물에 젖지 않고 불에 태우면 자작 자작하는 소리가 나기때문에 자작나무란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기름끼가 많아 잘 썩지않으므로 옛부터 북부 산간지방에서는 너와집의 지붕재료로 이용되었다. 또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매끄러운 흰 바탕은 그림이나 글씨를 쓸수있는 재료로 애용되었고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는 자작나무수피위에 그린것으로 알려져있다.
심변재의 구별이 확실하지않고 심재는 담황갈색이며 나이테도 뚜렷하지않아 재질이 균일하다. 기건비중 0.52정도로서 강도가 큰 나무는 아니며 잘 썩은 편이다. 용도는 기구재, 건축재등으로 사용되며 인쇄활판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자작나무로 판각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그많은 대장경재료를 모두 한 수종으로 판각하였다고는 볼수없고 필자의 조사결과로는 돌배나무, 산벚나무등이 판각목의 주축을 이루는 것같다.
⑷. 박달나무(자작나무과, Betula schmidtii, 檀木)
우리의 재래 동화에는 빠지지않는 것이 도깨비이야기이고 아울러서 단단하고 힘센것으로 대표되는 방망이, 홍두깨등이 등장한다. 이의 재료로는 대부분 박달나무이며 기타 강도가 요구되는 재료에 사용되었다.
기건비중이 0.93에 달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목재중에는 가장 무겁고 단단한나무이다. 까치박달, 박달목서, 나도박달 및 개박달, 물박달나무등 비슷한 이름의 나무가 많으나 박달나무와는 다르다. 직경 1m, 높이 30m에 달하는 큰나무이며 전국 어디에서나 계곡을 따라 분포한다. 기구재, 가구재, 건축재, 조각재등 광범위하게 쓰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나무이다.
⑸. 느티나무(느릅나무과, Zelkova serrata, 槐木)
오래된 동네의 어귀에는 어김없이 정자나무 한두그루가 초가 지붕과 어울어져 서정적인 우리의 농촌마을을 대표한다. 정자나무의 수종은 느티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왕버들등이나 느티나무가 거의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정자나무로서 느티나무만 상상하여 키가 작고 넓게만 퍼지는 나무로 알면 큰 잘못이다.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하여 자라는 느티나무는 곧바르게 자라서 높이 50m, 직경 3m에 달하는 우리나라 나무중에서도 크게 자라는 나무에 속한다. 옛 문헌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괴(槐)로 표기하므로서 혼란을 일어키고 있다.
심변재의 구분이 비교적 확실하고 심재는 황갈색의 아름다운 색조가 돋보인다. 나무결이 아름답고 약간 윤이 나며 잘 썩지않고 가공하기 쉽다. 기건비중 0.74로서 단단하고 비교적 큰 강도를 갖는다. 나무의 여러가지 성질을 종합해 볼때 가장 우수한 나무로 생각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량재인 Walnut, Teak, Mahogany, Rose wood, Ebony등에 비교하여서도 손색이 없는 재질을 갖고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느티나무의 재질을 잘 알아서 알맞게 사용하여 온 예를 여기저기서 볼수있다. 원삼국시대의 경산임당고분 및 경주 황남대총의 관재, 완도 어두리 고려초 화물운반선의 선체저판, 무량사와 화암사 및 제주도의 조선후기 향교인 관덕정의 기둥을 비롯하여 고급가구재, 기구재, 선박재, 조각재등 사용범위는 이루 헤아릴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가구재로서는 오동나무, 먹감나무와 더불어 3 대 우량재로 넣는다.
⑹. 밤나무(참나무과, Castanea crenata, 栗)
밤이라면 날카로운 긴침이 달려있는 밤송이를 연상하면서 군밤의 달큼한 맛을 잊지못하는 우리들과 가장 가까운 열매중의 하나이다. 선인들도 식량자원으로서 밤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한것 같으며 낙랑고분 및 의창다호리 가야고분에서는 밤알이 출토된 바있다. 고려때에도 밤나무의 재배에 대한 기록이 있고 이조에 들어와서는 경국대전에 밤나무의 재배방법을 지시하고 있으며 특히 이조초기에는 밤나무식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흔적이 이조실록의 곳곳에 보인다.
직경 1m, 높이 15m에 이르는 큰나무이며 심변재의 구별이 확실하고 심재는 갈색을 나타낸다. 기건비중 0.60정도로서 단단하고 강인하며 재에 타닌함량이 많아 잘썩지않는다. 산림경제에는 밤나무가 잘 썩지않고 재질이 우량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땅에 접촉하거나 땅속에 들어가는 용도로 적당하며 관재, 건축재, 기구재, 교량재, 가구재등 널리 쓰인다.
⑺. 참나무(참나무과, Quercus spp. ?)
우리나라의 나무중 침엽수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이고 활엽수를 대표하는 나무는 참나무라 할수있다. 참나무는 식물학적으로는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수종에 대한 공통의 명칭이다. 낙엽성이며 잎의 모양이 밤나무잎 처름 날엽하고 길죽하게 생긴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같은 낙엽성이면서 둥그스럼하고 비교적 큰 잎을 가진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및 떡갈나무, 상록성이며 남쪽지방에 주로 자라는 가시나무, 붉가시나무 및 종가시나무등은 모두 참나무로 통칭되는 나무이다. 또 참나무란 이름의 나무들은 모두 도토리를 생산하므로 도토리나무란 이름이 더 친숙하고 쉽게 알수있을지 모른다.
참나무는 땅이 깊고 비옥한 곳을 좋아하는 잎이 떨어지는 큰나무이며 떡갈나무는 직경 20 - 30cm에 불과하나 그외의 참나무류는 나무높이 20 - 30 m, 지름 1 m까지 달한다. 기건비중 0.8, 압축강도 560 kg/cm2, 인장강도 950 kg/cm2, 휨강도 600 kg/cm2 정도로서 나무질은 단단하면서 질기고 쉽게 썩지않으므로 쓰임새는 기구재, 선박재, 농기구, 건축재, 숯제조등 다양하였다.
나무의 재질과 분포특성으로 보아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우리의 선조들은 처음 참나무로 만든 움막집에서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생각되며 실제로 신.구석기 시대유적에서 많은 참나무가 출토되고 있다. 건축재로서는 무량사 극락전 기둥이 상수리나무이고, 선박재로서는 완도 어두리 화물운반선의 외판과 가룡 및 장삭이 상수리나무와 졸참나무, 관재로서는 의창다호리 가야고분의 목관재가 상수리나무인 것등 참나무는 선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나무이었다.
아울러서 참나무류는 가뭄이 들어 사람이나 산짐승이 모두 굶주림에 허덕일때 풍년이 들때 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를 생산하는 특성을 갖고있어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구황식물(救荒植物)로서도 각광을 받아온 것으로 생각된다. 일산신도시지역 선사유적 발굴조사에서도 졸참나무가 출토 되었으며 이조초기의 세종, 세조, 선조실록에는 흉년에 대비하여 도토리의 비축을 권장하는 대목이 있어 선조들의 귀중한 식량자원이었음은 짐작케한다.
⑻. 산벚나무(장미과, Prunus sargentii, 山櫻)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등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에 이어 아직 새잎의 푸르름이 시작하기도 전에 온통 화사한 봄기운에 젖어들게 하는 꽃을 볼수있는 것이 산벚나무이다. 꽃의 아름다움에 견줄만큼 우량목재을 생산하는 나무이다. 전국의 어디에서나 자라고 높이 20m, 직경이 거의 1m까지 달하는 큰나무이다.
심변재의 구분이 확실하고 심재는 짙은 적갈색이며 조직이 치밀하고 곱다. 기건비중 0.62정도이고 잘썩지 않으며 가공이 쉽다. 용도는 조각, 칠기, 건축재등이고 목판인쇄의 재료로서 우수하고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산벚나무로 추정된다.
⑼. 산돌배나무(장미과, Pyrus ussuriensis, 山梨)
잘익은 산돌배나무의 열매는 식용할수 있으며 의창다호리 가야고분에서는 밤, 천선과와 함께 돌배가 출토된바 있다. 또 일산신도시 선사시대유적에서도 발견되었으며 감나무, 밤나무등과 마찬가지로 열매는 식용하고 목재는 유용하게 쓸수있는 나무로 우리의 선조들은 귀중히 여겨온 것 같다.
직경 60cm, 높이 10m 까지 잘랄수있고 옅은 홍갈색의 목재이고 조직이 매우 치밀하고 균일하다. 기건비중 0.73으로 약간 무거우면서 강도가 강하고 단단한 반면 가공은 비교적 용이하다. 기구재, 조각재등으로 사용되는데 산벚나무와 함께 대장경판각재로 추정된다.
(10). 녹나무(녹나무과, Cinnamomum camphora, 樟)
제주도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나무가 많이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의 녹나무는 제주도가 분포중심지인 상록활엽수이다. 남해안에 연하여는 녹나무와 매우 비슷한 생달나무가 있다. 직경 2m, 높이 30m에 달하는 큰나무이며 심변재의 구별이 명확하지 않고 심재는 짙은 녹갈색인데 무늬가 아름답고 특징적인 장뇌향기가 있어서 옛날에는 장뇌를 채취하던 나무이기도 하다.
기건비중은 0.52정도이나 비중에 비하여 강도가 크고 물속에서 잘 썩지않으므로 조선재로 유명하다. 이조때는 소나무와 함께 녹나무를 보호하였으며 선체는 소나무재, 선수부(船首部)와 외판 및 격벽(隔壁)등에는 녹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된 송원대 무역선에서는 선체의 격벽이 녹나무인 것을 확인한바 있다. 거북선을 비롯한 우리 전함의 외판을 보강하기 위한 재료로는 녹나무가 가장 적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 대형 통나무배를 만드는 데도 사용한 흔적이 있다.
(11). 감나무(감나무과, Diospyros kaki, 枾)
경기이남 지역의 양지바른 곳에 과수로 식재한 나무이다. 감의 재배역사는 최근 일산 신도시 지역의 토탄층에서도 발견되므로서 4-5천년 전까지 그슬러 올라갈수 있다. 직경 60cm, 높이 15m정도 자란다.
기건비중 0.61정도로 그렇게 단단한 나무는 아니나 건조가 매우 어렵다. 심재속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가거나 부분적으로 검게 착색된 재가 포함된 감나무를 특히 먹감나무라하여 선조들이 즐겨 사용하던 가구재이다.
(12). 물푸레나무(물푸레나무과, Fraxinus rhynchophylla, 水蒼木)
우리나라 어느 산의 계곡부나 산록에서 쉽게 만날수있는 나무이다. 가지를 꺽어 맑은 물속에 담그면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른 물이 울어나기 때문에 물푸레나무란 이름이 생겼다. 형태나 재질특성이 매우 비슷한 나무로는 들메나무가 있으며 물푸레나무보다 더 크게자라고 더 높은 곳에 분포한다.
직경 1m, 높이 30m에 달하는 큰나무이며 옅은 황갈색의 심재가 있다. 기건비중 0.77정도로서 강도가 매우 강하며 인성(靭性)이 크므로 현재는 운동구의 최적재료이다. 건축재, 가구재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목조문화재의 재료로 사용된 예는 그리 많지않다.
(13). 오동나무(현삼과, Paulownia coreana, 梧桐)
옛사람들은 딸을 낳으면 먼저 밭뚝에 몇 그루의 오동나무을 심어두었다가 시집보낼때 이 나무로 장농을 짜주었다고 한다. 딸이 시집갈 동안의 십수년이면 큰 나무가 될만큼 생장이 빠르고 재질도 좋은 나무이다.
직경 50 - 100cm, 높이 20m에 달하며 목재는 심변재의 구분이 거의 되지않고 옅은 홍백색을 나타내나 나이테에 따라 큰 물관이 있어서 아름다운 무늬가 나타난다. 기건비중은 0.30정도로서 우리나라 나무중에는 가장 가볍고 약한 나무이다. 그러나 비중이 큰 다른 나무에 비하여 흡습성이 낮고 열에 견지는 힘이 크며 가공이 쉽기 때문에 각종기구재, 악기재, 조각재, 가구재등 널리 쓰인다. 가야금을 비롯한 전통악기재로서는 최상급 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