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소장목판의 수종분석
우리나라는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을 비롯하여 조선조의 문집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목판을 가지고 있다. 선조들의 인쇄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기초연구와 학제간의 종합연구가 필요하다. 물론 목판에 의한 인쇄물의 문헌정리와 해석은 서지학의 범주이겠으나, 목판을 만든 재료가 나무이므로 이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보고(寶庫) 이기도하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않은 목판나무의 수집과정, 제작과정, 사용된 도구 등의 정보는 목판의 관찰과 분석에서 상당 부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수목은 그 생태적인 특성상 수종에 따라 한정된 지역에 만 분포하며, 선조들은 생활도구의 재료로서 광범위하게 이용되었다. 따라서 목판을 비롯한 목질유물의 수종분석은 목판을 만들던 장인들의 선호 나무를 알아 낼 수 있다. 아울러서 이런 수종들이 어디에 어떻게 분포하는 지는 목판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1. 목판 수종과 제작과정의 개요
나무는 수많은 세포로 구성된 유기물이다. 세포의 모양이나 크기 배열상태 등은 수종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이런 것들이 모여서 나무마다 다른 성질을 나타낸다. 목판의 글자 새김에 적당한 나무는 몇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세포의 크기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되며 너무 물러 글자를 새겨서 인쇄를 할 때 쉽게 글자 획이 떨어져 나가지 않아야 한다. 또 같은 나무 안에서도 세포의 크기가 거의 일정한 크기로 고른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1천 여 종의 나무가 있지만 목판으로 쓸 수 있는 나무는 십여 수종 남짓하다.
목판에 쓸 나무는 골라내면 베어서 하산해야 한다. 통나무 상태 그대로 판 새김 장소로 옮겨오지 않고 일단 켜서 목판 판자만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벌채를 한 후 대체로 1~2년 정도 현장에 그대로 놔두는 숙성단계가 필요하다. 흔히 목수들이 숨을 죽인다는 과정, 과학적으로는 응력(應力)제거를 위함이다. 이후 2인용 탕개톱이나 1인용 붕어톱을 이용하여 필요한 치수의 판자를 켠 다음 피죽과 결함이 있는 것은 버리고 목판제작에 알맞은 판자만 운반하면 훨씬 더 노동력이 적게 들고 효과적이다.
판자는 곧 바로 건조과정에 들어간다. 목판은 두께가 3-5cm에나 이르므로 말리는 과정에 비틀리거나 갈라져 버릴 우려가 높다. 따라서 대부분의 경우 소금물 삶음처리가 필수다. 이후 음지에서 적어도 1-3년 동안 천천히 건조를 시킨다. 한 장의 목판을 만드는데 최소 2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2. 시편 채취와 분석 방법
2.1. 시편채취
경북 안동 소재 국학진흥원의 장판각(藏板閣)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후기 양반가 문집 590권 55,033 목판을 대상으로 하였다. 각 권별 1~9개의 목판을 임의로 선정하고 목판본체를 마구리에 끼워 넣은 부분(그림1)에서 목판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0.5x1.5x2cm전후의 장방형 분석용 시편을 채취하였다.
총 55033장의 목판에서 1,719목판을 선정하였다. 시편 채취기준은 권별 목판이 3개 이하일 경우는 시편 1개, 목판이 20개 이하인 경우는 시편을 2개, 목판의 수가 20~200개일 경우는 시편을 3개, 목판의 수가 200~350개인 경우는 시편은 4개, 목판의 수가 350~500개 인 경우는 시편을 5개, 목판이 500개 이상인 경우는 목판 100개 당 시편을 1개씩 채취하였다.
2.2. 분석방법
수집된 시편은 물속에 침지하여 충분히 흡습을 시키고 건조재이므로 연화처리가 필요하였다. 물과 글리세린 1:1의 혼합액에서 삶음을 반복하여 충분한 연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으나 일부 너무 단단한 시편은 가압처리 하였다. 실체현미경 및 육안으로 정확한 목재의 3단면을 노출시켰다. 즉 나무는 단면마다 세포형태나 배열이 다르므로 가로 단면인 횡단면(橫斷面 cross section), 나이테에 직각으로 자른 방사단면(放射斷面 radial section), 나이테와 같은 방향으로 자른 접선단면(接線斷面, tangential section)으로 구분하였다.
할주식 마이크로톰(sliding microtome)으로 각 단면 별 두께 20㎛의 절편을 제작하여 safranine으로 염색하였다. 절편은 아라비아고무로 봉입(封入)하여 일시프레파라트를 만들었다. 일부 시편은 알코올 50%에서 시작하여 70%, 90%, 100%의 단계별 알코올계열 탈수 후 canada balsam으로 고착하여 영구프레파라트를 만들었다.
광학현미경을 이용하여 목재의 세포조직을 관찰하고 목재조직학(木材組織學, wood anatomy)적인 특징과 수종별 기 발표 자료와 비교 검토하여 해당 수종을 검출하였다.
3. 수종분석 결과
3.1 목판 수종의 개요
총 1,719개의 시편을 광학현미경으로 조사한 결과 10개의 수종이 검출되었다. 고로쇠나무(Acer sp.), 박달나무(Betula sp.), 거제수나무(Betula sp.), 감나무(Diospyros sp.), 산벚나무(Prunus sp.), 서어나무(Carpinus sp.), 오리나무(Alnus sp.), 돌배나무(Pyrus sp.), 피나무(Tilia sp.), 은행나무(Gingko sp.)였다. 은행나무 이외는 나머지 9종은 모두 낙엽활엽수재였다. 각 수종별 분포비율에서 고로쇠나무가 가장 많은 633판으로 36.8%를 차지하고 있으며, 박달나무가 364판으로 21.2%, 거제수나무 338판으로 19.7%였다. 이들 3수종을 합치면 77.7%에 이른다. 그 외 감나무가 142판으로 8.3%, 산벚나무 114판으로 6.6%, 서어나무 46판으로 2.7%, 오리나무 41판으로 2.4%, 돌배나무 36판으로 2.1%, 피나무가 4판으로 0.2%를 차지하였으며 은행나무는 1점이 검출되었다.
수종명 |
고로쇠 나무 |
박달
나무 |
거제수 나무 |
감
나무 |
산벚
나무 |
서어
나무 |
오리
나무 |
돌배
나무 |
피
나무 |
은행
나무 |
총계 |
목판
숫자 |
633 |
364 |
338 |
142 |
114 |
46 |
41 |
36 |
4 |
1 |
1,719 |
점유율(%) |
36.8 |
21.2 |
19.7 |
8.3 |
6.6 |
2.7 |
2.4 |
2.1 |
0.2 |
0.1 |
100 |
3.2 목판 수종의 현미경적인 특징
현미경으로 목재의 세포조직을 관찰하고 목재조직학(木材組織學, wood anatomy)적인 특징에 따라 해당 국학원 목판의 수종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3.2.1. 은행나무(Ginkgo biloba)
횡단면에서 세포의 배열은 침엽수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세로방향 배열이 약간 흐트러지며 가끔 은행나무의 가장 큰 특징인 이형세포(異形細胞)가 관찰되고 있다. 조만재의 이행도 완만하며 가도관의 형태도 원형 또는 타원형의 세포가 섞여 있다. 방사조직은 모두 단열이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사슬모양으로 이어진 이형세포가 나타나고 가도관의 유연벽공은 2열이 명확하다. 접선단면에서는 방사단면과 마찬가지로 사슬모양 이형세포를 관찰할 수 있다. 방사조직의 높이는 1~4세포정도이다. 이형세포는 침엽수로서는 은행나무에만 분포하며 안에 수산석회 결정(crystal)이 들어 있다.
3.2.2. 거제수나무(Betula sp.)
전형적인 산공재로서 관공은 나이테 안에서 고루 분포하며 가끔 방사성의 경향도 있다. 관공은 고립관공과 2~6개의 방사복합관공으로 이루어진다. 고립관공의 접선방향지름은 0.08~0.1mm 정도이고 고립관공의 외형은 약간 각형이다. 1mm2당 관공의 분포수는 40~60개 정도이다. 축방향유조직은 산재상, 접선상, 또는 종말상으로 분포한다. 도관 상호 간 벽공은 매우 크기가 작은 유연벽공이 서로 유합(癒合)해 있는 독특한 형태를 나타내므로 비슷한 다른 수종과 주요한 구별점이 된다. 도관방사조직 간 벽공 역시 도관 상호 간 벽공과 비슷한 형태의 유연벽공이 전체 방사조직에 걸쳐서 관찰된다. 계단상 천공을 가지며 바(bar)의 수는 10~15개 정도이다. 방사조직은 주로 동성형이고 1~3세포 너비이다.
3.2.3 박달나무(Betula sp.)
관공이 연륜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산공재이며 고립관공 혹은 2~5개씩 복합한다. 그러나 고립관공이나 2개씩의 복합관공이 많고 1mm2당 관공의 분포수는 20~30개로서 거제수나무보다는 훨씬 적다. 목섬유의 세포벽이 두껍고 축방향유조직은 드물게 관찰되며 산재상, 접선상, 또는 종말상으로 분포한다.
방사단면에서는 도관요소 아래위로는 계단상천공이 관찰되며 바의 수가 10개 이하로서 거제수나무보다 약간 적다. 도관 상호 간 벽공은 매우 크기가 작은 유연벽공이 서로 유합(癒合)해 있는 독특한 형태를 나타낸다. 접선단면에서는 1~3세포폭의 방사조직이 관찰되며 긴 방추형을 나타낸다.
3.2.4 오리나무(Alnus sp.)
관공이 연륜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산공재이다. 고립관공은 외형이 약간 각(角)을 이루고 2개 이상의 관공이 방사복합하는 경향이 강하다. 넓은 집합방사조직의 영향으로 연륜경계는 물결모양을 이루는 경우가 많고 축방향유세포는 대부분 산재상으로 분포한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계단상천공이고 바(bar)의 수는 11 ~ 20개 정도이다. 축방향유세포 스트랜드(strand)는 5-8개이고 방사조직은 모두 평복세포로만 구성된 동성형이다.
접선단면에서 보면 방사조직은 대부분 단열이고 드물게 2열을 관찰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사조직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집합방사조직이 분포한다. 도관상호간 벽공은 나란히 배열을 하고 있는 대상벽공을 이루고 있다.
3.2.5 서어나무(Carpinus sp.)
지름이 작은 관공이 연륜전체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산공재이다. 오리나무와 마찬가지로 집합방사조직이 분포하므로 연륜경계가 물결모양인 경우가 많다. 3-7개씩의 방사복합관공이 집합방사조직의 사이에 분포하며 방사상배열 경향이 강하다. 축방향유세포는 주로 산재상이나 드물게 접선상유조직이 관찰 된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도관요소 벽에는 나선비후가 있고 단천공이다. 도관방사조직간 벽공은 원형 또는 각형의 단벽공이다. 직립 혹은 방형세포내에서 능형결정이 관찰되기도 한다.
방사조직은 오리나무와 달리 단열과 다열이 섞여있으며 3-5열의 방사조직이 밀집하여 분포하는 집합방사조직이 관찰된다. 방사조직은 동성 혹은 이성Ⅲ형이다. 도관 상호간 벽공은 교호상 배열을 하고 있다.
3.2.6 산벚나무(Prunus sp.)
비교적 지름이 작은 관공이 연륜전체에 다량 분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공재이다. 관공은 고립관공이거나 불규칙한 방향으로 2-3개씩 모여 복합관공을 만들고 있다. 관공의 윤곽은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특징적인 것은 세포 안에 검(gum)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포함된 관공을 흔히 볼 수 있다. 축방향유조직은 연륜경계에 분포하는 종말상유조직이 대부분이다.
방사단면상에서 도관내벽에서는 나선비후가 관찰되고 도관요소 전체에 분포하고 있다.
방사조직은 이성Ⅱ형을 흔히 볼 수 있고 다열부는 평복세포, 가장자리 2-4열만 직립 혹은 방형세포이다. 도관 방사조직간 벽공은 원형 또는 각형의 단벽공이다. 축방향유세포 스트랜드는 3-4개이며 단천공이다.
접선단면상에서 방사조직은 4-10세포폭의 동성형 또는 이성Ⅲ이며 도관 상호간 벽공은 교호상이다.
3.2.7 돌배나무(Pyrus sp.)
다각형의 작은 관공이 연륜 전체에 고루 퍼져 있고 관공 수가 많은 산공재이다. 관공은 대부분 고립관공이나 복합관공도 간혹 눈에 띠다. 축방향유조직은 산재상, 짧은접선상이며 비교적 많은 양이 분포한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나선비후가 도관요소 전체에 분포한다. 방사조직은 모두 평복세포로만 이루어졌고 축방향유세포 스트랜드는 9개 이상 이다.
접선단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도관상호간 벽공은 교호상이며 방사조직은 1-3세포폭이다.
3.2.8 고로쇠나무(Acer sp.)
관공의 분포가 연륜전체에 거의 균일하게 분포하는 전형적인 산공재다. 관공은 대부분이 원형 또는 타원형의 고립관공이며 간혹 2-3개의 방사방향 복합관공도 관찰된다. 축방향유세포는 연륜의 끝 경계에서만 분포하는 종말상이며 2-3세포나비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도관요소의 세포벽에는 미세한 나선비후가 관찰된다. 도관요소 상호간 축방향유세포 스트렌드는 3-4개로서 비교적 짧다. 도관요소 아래 위는 단천공이 분포하며 방사조직은 모두 평복세포로만 구성되어 있다. 접선단면에서 방사조직은 1~5열의 다열방사조직으로서 방추형을 나타낸다. 도관 상호간 벽공은 벽공의 외형이 각형을 이루며 교호상이 명확하다.
3.2.9 피나무(Tilia sp.)
관공이 나이테 전체에 고루 분포하는 대표적인 산공재이다. 고립관공도 섞여 있으나 대부분 2~5개씩 방사방향 혹은 불규칙하게 관공이 모여 복합관공의 형태를 띠고 있다. 때로는 그 이상으로 집단상(集團狀)을 보이며 비교적 관공의 분포수가 많다. 축방향유조직은 전형적인 짧은접선상을 나타내며 연륜경계는 종말상방사조직도 관찰할 수 있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도관요소 상호간에는 단일천공을 가지고 있으며 상호간 벽공은 교호상이다. 도관요소 세포벽에는 나선비후가 현저하여 다른 수종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방사조직은 동성형이고 축방향유세포 유세포 스트렌드는 3~4개이다. 접선단면에서는 방사단면과 마찬가지로 유세포 스트렌드와 나선비후가 관찰되고 방사조직은 1~5세포나비이며 다열방사조직은 높이가 높고 끝이 뾰족한 방추형을 나타낸다.
3.2.10 감나무(Diospyros sp.)
관공의 세포벽이 특징적으로 두꺼우며 1mm3당 관공 분포개수가 15개 전후에 불과한 산공재이다. 주로 고립관공으로 분포하나 2~5개가 방사방향으로 접합한 복합관공도 섞여있다. 축방향유조직은 현저하지 않으나 주위상이 많고 산재상이나 짧은 접선상도 관찰된다.
방사단면에서 보면 도관요소 상호간 천공은 단일천공이고 도관상호간 벽공은 대상이며 축방향유세포 스트렌드는 4~5개 정도이다. 방사조직은 동성형을 거의 찾을 수 없고 이성Ⅰ 형 혹은 이성Ⅱ형이 대부분이다.
접선단면에서 방사조직은 단열 혹은 복열이고 드물게 3열까지 나타난다. 방사조직의 높이가 비슷하면서 가로로 배열하여 층계상에 가까운 리플마크 특징을 볼 수 있다.
4. 목판 수종의 의미와 종합고찰
5만여 점의 목판에서 수집한 1,719개의 시편으로 목판제작 수종을 분석한 결과, 모두 10종이 검출되었다. 가장 많은 나무는 고로쇠나무이고 다음은 박달나무와 거제수나무가 거의 비슷한 숫자이며 이 세 나무가 78%로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어서 감나무, 산벚나무, 서어나무, 오리나무, 돌배나무가 각각 2~8%정도 이용되었다. 피나무와 은행나무는 극소량이 사용되었다. 조사방법이 전수조사가 아니라 표본조사이므로 전체 목판의 수종 구성을 아는 데는 다소 무리가 있으나 전체적인 경향은 추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용 수종은 모두 우리나라 중부지방에 흔히 자라는 나무들이다. 다만 은행나무는 중국에서 들여와 사찰이나 서원에 심은 나무이고, 감나무는 중남부 의 비교적 따뜻한 지방에 과수로 키우는 나무이다. 거제수나무는 높은 산의 중복 이상에 자라는 고산 수종이며 나머지는 마을 부근의 야산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흔한 나무들이다.
나무 재질의 공통 특징은 세포배열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약1천여 종에 이르는 우리 나무 중에 세포의 크기가 너무 크지 않고 균일하며 물관은 나이테 전체에 고루 배열하는 이른바 산공재(散孔材, diffuse porous-wood)만을 골라내어 사용하였다. 복잡한 한자 글자를 새기기 쉽고 여러 번 인쇄를 하더라도 쉽게 글자가 닳지 않을 나무를 선택하였다. 사용한 10종은 우리나라 중부지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글자 새기기에는 최고의 품질을 가진 수종들이다.
각 수종별 특징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고로쇠나무
고로쇠나무는 골리수(骨利樹)란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짐작한다. 이른 봄 나무의 수액(樹液)을 채취하여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이유다. 이렇게 고로쇠나무는 ‘물 빼먹는 나무’로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나무의 재질이 좋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식물학적으로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의 한 종류다.
단풍나무 종류는 우리나라에 20여 종류쯤 있다. 잎이 아기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생긴 단풍나무가 가장 흔하고, 개구리 발처럼 생긴 고로쇠나무, 잎이 3개씩 붙어 있는 복자기나무, 잎이 셋으로 얕게 갈라지는 신나무 등이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자주 만나는 단풍나무 종류이다.
그러나 단풍나무 종류는 목재조직학의 기법으로 종(種)간의 차이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래서 자람 특성에서 사용가능 나무를 찾아본다. 우선 가을에 붉게 물드는 일반 단풍나무는 단풍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나무는 아름드리로 굵게 자라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목판에 진짜 단풍나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굵게 자라는 단풍나무 종류는 고로쇠나무와 복자기나무이다. 고로쇠나무가 더 흔히 만날 수 있으며 복자기나무 보다는 표고가 낮은 곳에 주로 자란다. 따라서 목판에 사용된 단풍나무 종류는 고로쇠나무로 추정하였으나 복자기나무도 상당부분 포함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팔만대장경판의 일부도 고로쇠나무로 만들어 졌으며 옛날에는 소반을 비롯한 생활용품 만드는데 널리 이용되었다.
조사 목판에서 36.8%로 고로쇠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목판재료로 적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쉬웠던 탓으로 생각된다. 다른 목판제작 수종에 비하여 고로쇠나무의 재질이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박달나무
박달나무는 단군신화에 나올 만큼 선조들과 가까이 있었던 나무이다.
옛 가옥의 생활필수품으로 대청마루 한쪽 구석에는 어김없이 다듬잇돌과 다듬이 방망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명주 옷감을 감아 다듬이질 할 때 쓰던 홍두깨와 함께 시집살이의 고달픔의 상징물이다. 빨래방망이나 디딜방아의 방아공이와 절굿공이, 아름다움을 가꾸던 마님의 얼레빗, 나졸들의 육모방망이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도깨비를 쫓아내는 상상의 방망이도 바로 박달나무다. 지금도 단단하고 힘센 것을 말할 때는 박달나무 방망이로 대표된다. 우리나라의 어디에나 잘 자랐으므로 박달고개란 지명도 흔히 있다.
식물학적으로 박달나무와 아주 가까운 나무에는 물박달나무와 개박달나무가 있다. 셋은 세포배열이 비슷하여 현미경으로 나무 종류를 명확히 찾아내기는 어렵다. 목판에 사용된 나무는 각종 용구 만들기에 잘 쓰이는 박달나무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일부는 물박달나무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개박달나무는 목판을 만들 만큼의 굵기로 자라지 않는다.
조사 목판의 21.2%가 박달나무 목판이었다. 다른 나무보다 단단하여 새김에 약간의 공임이 더 들어가지만 여러 번 인쇄하여도 글자판이 잘 망가지지 않은 장점이 있다.
거제수나무
자작나무와 거의 같이 하얀 껍질이 특징이나 거제수나무는 연한 황갈색을 띠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한자로는 황화수(黃樺樹)이라고 한다. 황자작이란 뜻이며 황단목(黃檀木)라고도 부른다. 자라는 곳은 남쪽으로 조계산, 백운산, 지리산, 가야산에서 출발하여 소백산, 두위봉, 가리왕산, 오대산, 설악산으로 이어진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나무라 표고 600~1,000m 전후의 고지대에 주로 자란다.
자람의 방식은 한 나무씩이 아니라 무리를 이루어 자라는 경우가 많다. 이 나무는 4월말이나 5월초쯤의 곡우 때가 되면 줄기에 구멍을 뚫고 파이프를 꽂아 물을 받아 마신다. 곡우물이라는 이 물을 마시면 병 없이 오래 산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조들은 여기에다 재앙을 쫓아낸다는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하여 거제수나무를 ‘去災水’로 나타내기도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한자 이름은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하나의 한자 이름 혼란이 있다. 거제수나무를 ‘巨濟樹’라하여 거제도에서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관련 문헌 중에 이거인의 ‘개간인유’에 보면 거제도에서 가져온 거제목(巨濟木)이란 말이 들어있어서 혼란이 생긴 것 같다. 거제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나무다.
거제수나무 목판은 조사목판의 19.7%였다. 거제수나무의 자람터는 높은 산이므로 운반의 어려움을 상상할 수 있으나, 벌채한 한 후 현장에서 켜서 판자만 가지고 내려오는 과정으로 경판 판자 수집이 이루어졌을 것이므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대체로 목판제작 재료를 가까운 곳에서 조달하였다고 가정하면 거제수나무 목판은 산간지방에서 제작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감나무
과일나무로서 감나무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일만이 아니라 재질이 좋기로도 널리 알려진 대표나무이다. 단단하고 고른 재질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굵은 나무속에 검은 줄무늬가 들어간 것을 먹감나무(烏柿木)라 하여 사대부 집안의 가구, 문갑, 사방탁자 등에 장식용으로 예부터 널리 이용되었다.
감나무는 오동나무 및 느티나무와 함께 조선조 3대 가구 제작 수종으로서 고급 쓰임이 있었음에도 목판 재료로 8.3%나 될 만큼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다. 목판 제작 시간에 쫓기고 당장 재료확보가 어려울 때 민가 근처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감나무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산벚나무
우리가 흔히 벚나무라고 부르는 나무에는 종류가 많다. 산벚나무, 올벚나무, 왕벚나무, 벚나무 등 20여 종이 우리나라에서 자란다. 봄날 화려한 꽃으로 앞산과 뒷산을 장식하는 산벚나무에 익숙하다. 세포 모양에 따라 나무 종류를 찾아내는 목재조직학의 지식으로 벚나무 종류를 하나하나 구분하기는 어려우므로 목판을 새긴 벚나무의 대표를 산벚나무로 했다. 잘 썩지 않고 나무질이 좋은 심재 부분이 많으며 조직이 치밀하고 세포가 고르게 분포하여 전체적으로 고운 느낌을 준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만든 나무는 2/3가 산벚나무이다. 옛 문헌에 보면 벚나무와 자작나무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다 같이 화(樺)자를 썼다. 벚나무 껍질은 화피(樺皮)라는 이름으로 활을 만드는데 필수품으로 들어가는 군수물자이었다.
조사 목판의 6.6%가 산벚나무였으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에 64%나 쓰인 것에 비교하면 훨씬 적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껍질이 세로로 갈라지는 것과는 달리 산벚나무는 가로로 짧은 선처럼 갈라지기 때문에 몽골군에 유린당한 육지에서 몰래 한 나무씩 베어 내기가 쉬웠던 탓으로 짐작된다. 국학원 목판은 동시에 한꺼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특정 수종이 집중적으로 쓰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서어나무
서어나무를 일컫는 한자말에 서목(西木)이란 말이 있다. 왜 나무 이름이 서목이 된지는 알 수 없으나 서쪽에 있는 나무란 뜻인데 우리말로 읽을 때 서어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숲은 서울지방을 포함한 중부지역을 ‘온대중부’라고 한다. 서어나무는 참나무종류와 함께 이 지역을 대표하는 나무로서 서어나무대(帶)로 표기한다. 넓은 지역에 걸쳐 자랄 만큼 많은 우리나라에는 서어나무가 많이 자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나무는 쓰임새가 그렇게 많지 않다. 방직용 목관(木管), 피아노의 액션, 운동구, 버섯골목 등에 소량으로 쓰이기도 하나 나무 쓰임새의 최하등급인 ‘땔나무(火木)’가 더 격에 어울린다. 이유가 있다. 우선 줄기가 울룩불룩하여 잘라 놓고 보면 둥그스름한 원형이 아니라 아메바를 보고 있는 듯 울룩불룩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판자로 켜기에 부적합하고 나무는 건조가 어려우며 잘 썩기까지 한다.
그러나 2.7%나 서어나무가 목판재료로 쓰인 것을 보면 감나무의 예처럼 시간에 쫓겼거나 재료확보가 어려울 때 대용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리나무
유적지 출토 고목재를 분석해 보면 안압지의 주위에도 오리나무가 심겨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조선조 왕릉권역의 계곡부 등 전국의 습한 지역의 대부분에는 오리나무가 널리 자라고 있다. 이렇게 습기가 많은 낮은 곳에 주로 자라는 오리나무는 재질도 비교적 좋아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으로 널리 이용되었다. 가볍고 연한 듯 하면서도 질기고 세포의 크기가 들쭉날쭉하지 않아 나무 공예품을 만들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나막신, 하회탈을 비롯하여 칠기의 목심(木心)까지 옛 목제품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무다. 오리나무 종류에는 둥근 잎을 가진 물오리나무도 있으나 오리나무 보다 나무의 성질이 훨씬 떨어진다.
조사 목판의 2.4%가 오리나무로서 목판재료로서 특별히 사용하여야할 이유는 없고 흔히 자라고 있어서 재료의 확보가 쉬운 탓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돌배나무
옛 과일나무로 널리 알려진 나무다. 환경 적응력이 높은 탓으로 배나무에는 유난히 종류가 많다. 우리가 흔히 먹은 개량종 참배나무 이외에 돌배나무, 산돌배나무 등 한참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산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배가 달리는 나무는 대체로 돌배나무가 아니면 산돌배나무다. 둘의 재질 차이는 전혀 없다.
아름드리로 자랄 수 있는 돌배나무는 가구에서 조각재까지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나무 속살은 곱고 치밀하여 글자를 새기는 목판 재료로는 고급에 속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의 15%가 돌배나무로 만들었다. 국학원 목판은 2.1%가 돌배나무이다. 고급 목판 재료로서는 쓰임 비율이 낮다. 아마 산속의 과일나무로서 자르기를 꺼려하였거나 곧은 재료가 그 만큼 적지 않았나 짐작된다.
피나무
피나무는 쓰임이 광범위한 나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 원년(1776) ‘피나무를 판목으로 쓰기 위하여 몰래 베어내는 일이 많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외 불경을 얹어 두는 상(經床), 밥상, 교자상, 두레 반을 비롯하여 산간지대에서는 굵은 피나무의 속을 파내어 독으로 쓰기도 하였다. 또 바둑판의 재료로도 유명하다. 비자나무나 은행나무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바둑돌을 놓을 때 표면의 탄력성과 연한 갈색이 바둑판의 재료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피나무 껍질의 섬유는 질기고 길어서 밧줄이나 삿자리, 각종 농용 도구에서 어망까지 섬유자원으로서 대단히 귀중하게 이용하였다. 피나무란 이름은 껍질(皮)을 쓰는 나무란 뜻에서 유래되었고 영어로도 basswood라 하여 같은 의미이다. 절에 흔히 심어두고 ‘보리수’라 부르는 나무가 바로 이 피나무다.
국학원 목판에는 불과 4판이 들어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나무가 목판으로 쓰인 것은 좀 이외이다. 나무가 너무 연하여 글자를 새기기는 쉽지만 글자판이 망가질 염려가 있어서다. 다른 나무의 대용재로 잠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은행나무
약 2억5천만 년 전,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들은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은행나무의 고향은 중국이고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 언제부터 우리의 친근한 나무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위엄이 당당할 만큼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전국에는 약 8백여 그루의 은행나무 거목이 보호되고 있고 5백 살이 넘는 나무도 수두룩하다. 사찰에 주로 많이 심었으나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杏壇)의 나무로 생각하여 서원이나 사당 등 흔히 심어 지금도 렌드마크 나무로 남아 있다.
나무 색은 연한 황갈색을 띠면서 너무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아 예부터 고급 나무로 널리 이용되었다. 바둑판, 가구, 상, 칠기심재 등으로 사용되었고 불상을 비롯한 각종 불구(佛具)에도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단 1개의 목판이지만 은행나무가 사용된 예는 처음이다. 소나무나 전나무등 다른 침엽수에 비하여 재질이 고르고 적당한 강도도 가지고 있어서 목판새김에 문제가 될 결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함부로 벨 수 없는 사찰이나 서원에 한 그루 씩 자라고 있어서 물량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널리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5. 결론
한국국학원 소장 총 55033장의 목판에서 1,719목판을 임의 선정하여 목재조직학적인 기법으로 사용 수종을 분석하였다. 고로쇠나무 633판(36.8%), 박달나무 364(21.2%), 거제수나무 338판(19.7%)이었다. 이들 3수종을 합치면 77.7%에 이른다. 그 외 감나무가 142판(8.3%), 산벚나무 114판(6.6%), 서어나무 46판(2.7%), 오리나무 41판(2.4%), 돌배나무 36판(2.1%), 피나무 4판(0.2%)를 차지하였으며 은행나무는 1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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