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서지방 주요 고궁 및 사찰 정원의 탐방 연수 보고서
경북대 명예교수 박상진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2007.05.11~05.16(5박6일)에 걸쳐 일본 관서지방 주요 고궁 및 사찰정원을 탐방한 방문 보고서이다.
개황
우리나라 제주도와 비슷한 위도의 오사카, 교토, 나라 일원은 녹나무를 비롯한 상록활엽수가 많으며 침엽수로는 곰솔(海松)이 가장 널리 심겨있고 그 외 일본 특산의 삼나무와 편백들이 간간이 조경수로 유적의 주위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우량재로 유명한 녹나무(樟木)가 가장 흔하며, 가시나무 종류 와 잣밤나무 종류가 섞여있고 낙엽활엽수로는 팽나무, 침엽수로는 곰솔이 많다.
이런 나무들은 정원수로 심겨지면서 일본정원의 특징인 인위적인 다듬기가 되어 원래의 나무 모양을 갖고 있는 나무는 거의 만나기 어려울 정도이다. 자연스러운 멋을 그대로 살리는 우리 정원에서 만나는 소나무(赤松)는 일본 정원에서는 보기 어렵고 대부분 바닷가에 주로 자라는 곰솔을 심고 인위적인 모양잡기를 했다.
정원은 연못과 너무나 인위적인 조형미로 단장한 나무와 괴석에 이어 키 작은 꽃나무인 영산홍 등으로 치장하였으며 많은 벚나무로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이다. 이런 기본개념에서 수종이 조금씩 다를 뿐 정원마다 특색을 찾아내기 어려울 만큼 엇비슷하다.
수목 표찰은 오사카성이 비교적 잘 붙어있고 나머지 유적지에서는 거의 표찰을 찾을 수 없다.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의미로 나무를 심었을 뿐 나무 자체에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주요 탐방지
1. 오사카성(大阪城)
성을 둘러싼 해자가 있고 그 바깥쪽은 숲으로 둘러 쌓여있다. 녹나무와 팽나무가 주축을 이루며 해자 주위와 진입로에는 벚나무를 심어 꽃 필 때 ‘花見み(꽃구경)’를 즐기는 그들의 풍습에 알맞게 되어 있다. 키 작은 나무는 영산홍, 철쭉, 다정큼나무, 돈나무, 협죽도 등이 심겨져 있으나 꽃나무로서 특별히 배치를 고려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수목 보호를 위한 화단이 조성되어 있으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아 자유롭게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다.
2. 히메지성(姬路城)
오사카 성과 마찬가지로 해자가 있고 바깥쪽에 숲이 둘러 쌓여있다. 성채와 인접 하여는 나무를 많이 심지 않았으나 벚나무를 요소요소에 심어 꽃필 때의 경관을 특별이 고려한 것 같다. 역시 녹나무와 가장 많고 벚나무, 팽나무 등을 볼 수 있다. 성을 지을 당시에 기둥으로 사용한 전나무나 솔송나무를 심어 당시의 나무 쓰임을 이야기 거리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3. 킨카쿠지(金閣寺)
절 건물 앞에 있는 연못의 가운데를 각종 괴석으로 장식하고 작은 섬을 만들어 주로 소나무를 심었다. 대체로 다른 곳의 침엽수가 곰솔인 것과는 달리 이곳은 대부분 붉은 수피의 소나무를 심어 다른 곳과 차별화 되어 있다. 꽃나무를 거의 심지 않고 수생초본 식물을 심어 경관을 강조하고 금빛 건물의 그림자가 화려한 꽃빛깔에 죽지 않도록 고려한 것 같다. 절 뒤편의 숲은 인위적인 수목다듬기는 하지 않았으나, 여러 수종을 심어서 계절에 따라 운치를 달리할 수 있게 하였다. 부속건물의 담장을 따라서는 큰 키의 삼나무를 줄로 심어 단조로워지기 쉬운 경관에 악센트를 주고 있다.
4.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전(大佛殿)이란 어마어마한 규모의 목조건물이 중심이 되므로, 정원이 따로 조성되어 있지는 않다. 들어가는 입구의 사슴을 풀어둔 것부터 입구 공간을 친숙하게 처리하자는 뜻이 강하게 느껴진다. 곰솔을 진입로 양편으로 배치하고 안쪽으로는 역시 녹나무를 심어 평범한 나무심기를 했다. 특징적인 것은 큰 키의 곰솔은 위 부분을 잘라내어 강풍에 넘어지는 것을 미리 예방하였다.
대불전 앞으로는 넓은 잔디를 조성하고 참배로의 양 옆에는 여름 내내 붉은 잎이 특징인 상록수 홍가시나무를 심어 여름날의 초록빛에 악센트를 주고 있다. 대불전과 한참 떨어진 앞쪽 행랑(行廊)을 따라 벚나무를 심어 봄날의 풍치를 고려한 것 같다.
5. 하세테라(長谷寺)
수많은 일본의 사찰과 신사중에 절의 문화재적 가치만이 아니라, 모란동산을 조성하여 차별화로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한 절로 생각된다. 이곳은 사찰 앞에 수 백포기의 모란동산을 조성하고 있다. 여러 가지 모양과 꽃 색깔을 가지는 모란 품종을 수집하여 전시포와 같은 형태로 한 자리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려하면서도 튀지 않고 차분함을 가져다주는 모란은 예부터 널리 알려진 관상용 꽃이라 사람들에게도 쉽게 친숙해 진 꽃이다.
우리나라 김영랑 생가 터가 있는 강진에서 꼭 벤치마킹을 했으면 싶다.
6. 아스카사(飛鳥寺)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 모셔진 절이다. 좁고 작은 절이라 참고할 조경이랄 것도 없지만 나무심기가 일관성이 없다. 매화, 벚나무, 피나무, 삼나무, 이누마끼(イヌマキ)가 아무렇게나 심겨져 있고 태산목이란 미국원산의 나무까지 뒤섞여 있다.
7. 호류지(法隆寺)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유명한 절이다. 남대문에 이르는 넓은 진입로 양옆으로는 잘 다듬어진 곰솔이 가로수로 배치되어 있다. 금당(金堂)과 오층탑으로 이루어진 절의 중심부에는 회랑(廻廊)을 따라 6그루의 곰솔만이 심겨져 있고 위 부분은 모두 절단되어 있다. 바람으로 넘어질 때 건물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회랑 바깥쪽으로도 곰솔과 벚나무, 녹나무 등 비교적 단순한 수종이 심겨져 있고 잘라 내거나 크게 자라는 나무를 심지 않아 높이 자람을 억제 시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외과수술이란 이름으로 흔히 고목의 썩은 부분을 긁어내고 인공수지를 집어넣은 처리를 하지 않아 고목으로서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8. 니죠지(二條城)
평소에 개방하지 않는 혼마루 정원과 일반 관람이 가능한 니노마루 정원이 있다. 니노마루 정원은 가운데 큰 돌을 놓아 섬처럼 만들고 주위에는 여러 색깔의 괴석을 세워두는 형태로 장식을 하였다. 곳곳에 잘 다듬어진 곰솔과 드물게 소나무를 심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드문드문 화려한 꽃을 피우는 영산홍을 배치하여 초록에 악센트를 준 것으로 보인다.
니노마루 궁전 바로 앞에는 거의 한 아름에 이르는 먼나무를 심어 붉은 열매가 달리는 겨울날의 풍광을 한층 돋보이게 하였다. 정원에는 감탕나무 등 열매가 아름다운 나무를 비롯하여 다정큼나무 등 여러 나무를 심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한 것 같다. 그 외 성곽 주변 곳곳에는 다듬어진 곰솔과 벚나무가 심겨져 있다.
9. 헤이안 신궁(平安神宮)
신원(神園)이라고 부르는 헤이안 신궁 부속 정원이 있다. 약 만여 평에 조성된 이 정원은 일본의 전통 정원을 본뜨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간 정원이다. 신궁을 ㄷ자로 둘러싸면서 여러 개의 연못을 만들고 많은 작은 식물원 수준의 식물을 수집하여 명찰을 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목명 해설은 식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겐지이야기(源氏物語)를 비롯한 그들의 고전에서 한 구절씩 인용한 것이 특징이다.
10. 키요미즈데라(淸水寺)
교토의 외곽 산 중턱 절벽에 세워진 절로서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절이다.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하며 절 주위에 별다른 조경을 하지 않고 자연 풍광 그대로 어울림을 이룬다. 단풍나무와 구실잣밤나무 및 삼나무 편백이 있고 일부는 벚나무를 심어두고 있다.
우리궁궐에의 응용제안
일본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멋을 찾는 우리의 정원과는 달리 너무 인위적인 간섭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문화적 정서가 다르고 건물의 조성배경이 다르므로 우리 궁궐에 그대로 참고할 부분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연수 기간 동안 일본 정원에서 본 개괄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우리 궁궐의 나무심기에 관련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경복궁 : 조선왕조 전기의 정전으로서 건물복원과 함께 당시의 최고 권력이 있던 장소에 합당한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 복원한 건물에서 고풍스런 권위의 느낌을 줄 수 있는 상징은 고목심기로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방법으로 임금마다 왕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 관련나무를 선정하여 심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조는 배나무, 태종은 느릅나무, 세종은 쉬나무, 연산군은 오동나무 등이다. 이런 나무들의 고목을 전국에서 찾아 지자체에서 궁으로 기증하는 형식을 취하면, 나무 확보의 예산문제 등이 해결되고 지자체와의 유대 관계도 끈끈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창덕궁 : 후원의 숲을 보존하는 측면에서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보식(補植)정도로 변형이 없었으면 한다.
창경궁 : 창경궁은 원래 대비의 공간이므로 확대해석하여 ‘여인의 궁궐’로 나무심기를 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갯버들, 능수버들, 매화, 철쭉, 진달래, 조팝나무 등을 왕후와 관련지어 배치 할 수 있을 것이다.
종묘 : 지금의 갈참나무 숲에다 제사와 관련된 대추나무, 밤나무, 배나무, 감나무 등의 과일나무를 심어 종묘 공간의 특징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덕수궁 : 건물자체에 현대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와 있으므로 나무 심기도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나무가 들어와도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능수벚나무, 등나무 이외에 장미나 튤립 등을 식재하여 시민이 좋아하는 ‘꽃대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