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월인석보 목판의 재질
충남 갑사에 보관하고 있는 보물 582호 선조2년간월인석보판목(宣祖二年刊月印釋譜板木)를 새긴 나무는 재질을 분석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목판의 수종
목판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수집하여 현미경으로 관찰한 세포의 형태를 관찰하였다. 분석된 나무는 단풍나무 종류이었다.
물관의 분포가 흩어져 있으며 수가 그렇게 많지 않고 물관 벽에는 나선모양의 돌기가 있는 전형적인 단풍나무의 특징을 갖고 있다. 단풍나무 종류는 단풍나무를 비롯하여 고로쇠나무, 복자기나무, 신나무들 여러 종류가 있어서 정확한 어느 단풍나무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단풍나무 종류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을 하였다‘는 것은 맞지 않다. 단풍나무 종류와 계수나무는 세포의 배열 모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계수나무의 옛 표기 문제
지금까지 이 판목의 재질이 계수나무로 알려진 근거는 판목에 ‘桂樹‘로 새겼다는 표기가 있어서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말하는 계수는 단순히 오늘날의 ’계수나무’로 번역할 수 없는 복잡성이 있다.
우선 계수나무는 실제의 나무가 아니라 흔히 상상의 나무이다. 기록으로 알아보자. 세종16년3월22에 문․무과에서 사은전(謝恩箋)을 올리기를, ‘오랫동안을 두고 햇볕 아래의 해바라기처럼 그 정성을 기울여 오던 차에, 외람하옵게도 저 구름 사이의 계수나무 가지를 꺾게 되어, 한나라 궁전에 이름이 호창(呼唱)되고, 주나라 뜰에서 용안을 알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야흐로 자급을 초월하여 특이한 은총을 가하심에 놀랐더니, 음악을 갖추어 화려한 자리를 내려 주신 은택에 다시 몸을 적시었나이다...’고 하여 과거에 합격한 광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때의 계수나무는 상상의 나무로 본다.
성종14년(1483) 중국 사신 갈귀(葛貴)가 임금에게 지어 올린 시에 ‘늦가을 좋은 경치에/ ...계수나무 향기가 자리에 가득하네.’라는 내용이 있다. 늦가을에 꽃이 피어 강한 향기를 내는 나무는 따뜻한 지방에 정원수로 흔히 심는 ‘목서’라는 실제의 나무로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전설로 알려진 달의 계수나무이다. 옛날 중국의 오강(吳剛)이라는 사람은 잘못해서 옥황상제로부터 벌을 받게 됐다. 그는 달나라로 귀양을 가서 계수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기는 힘든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오강이 계수나무를 찍을 때마다 상처 난 곳에서는 새 살이 금세 돋아났다. 오강의 처절한 도끼질은 아직도 계속되지만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베어 넘어지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국의 고대신화에 항아(姮娥)라는 여인은 남편 예(羿)가 전설적인 신선 서왕모(西王母)로부터 어렵게 불사약을 구해다 놓고 잠깐 외출한 사이, 혼자서 두 사람 분을 한꺼번에 먹어치우고 그대로 달나라로 도망쳐 버린다. 그녀는 달나라에서 두꺼비가 되었다고도 하고 토끼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나중에 달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설화들은 뒤섞여서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다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된다. 물론 이 계수나무는 상상의 나무일 따름이다.
그 외 우리 주변에 흔히 자라는 나무 중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혼동되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몇 있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해의 신 아폴론은 짝사랑하던 다프네를 끈질기게 쫓아가자 그녀는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 버린다. 그 후 아폴론은 이 나무로 머리장식을 만들어 항상 몸에 지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본 따 승리자에게 나뭇가지로 얽어 짠 월계관을 씌워 주었으므로 월계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중해 연안을 고향으로 하며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 일부러 키우거나 잎에서 향료를 얻기 위하여 심는 나무일 뿐이다. 그러나 흔히 계수나무로 알려져 있다.
또 수정과의 톡 쏘는 매운 맛을 내는데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나무와 한약재로 주로 이용되며 약간 단맛과 향기가 있는 육계나무도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헷갈린다. 이들은 원래 중국남부에 자라며 늘 푸른 잎을 달고 있는 평범한 나무이나 이름에 들어있는 桂란 글자 때문에 흔히 계수나무로 불린다.
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식물학적인 실제 이름이 ‘계수나무’인 나무를 심고 가꾼다. 일본에서 들여온 수입나무인데, 일본인들은 ‘계(桂)’라고 쓰고 ‘가쯔라’라고 읽는다. 처음 수입한 조경업자가 글자 만 보고 계수나무라고 하여 그대로 공식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쓰임새가 많은 좋은 나무, 목서라는 좀 생소한 나무, 다프네의 슬픔이 녹아있는 월계수, 향신료로 쓰이는 계피나무나 육계나무, 일본에서 온 가쯔라 등이 모두 ‘계수’ 혹은 ‘계수나무’이다.
따라서 옛 문헌에 기록된 계수란 글자만 보고 계수나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오류이며, 실제나무가 무엇인지는 과학적인 분석만으로 가능하다. 계수나무로 불리는 여러 나무중 목판을 만들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는 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한 가쯔라 밖에 없으므로, 월인석보의 재질이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을 하였다‘는 것은 자칫하면 월인석보는 일본에서 수입한 나무로 만들었다는 엉뚱한 결론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