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는 대체로 강을 끼고 발달한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울산은 태화강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동해로 흘러 들어간다. 길이가 47.5㎞에 불과하지만 가지산·백운산 등 깊고 높은 산에서 발원하는 탓에 수량이 풍부하다. 백만 인구가 사는 울산의 젖줄로서 모자람이 없다. 시내로 들어온 태화강은 강가의 물이 넘나드는 둔치에는, 갯버들과 억새가 자리 잡은 다른 강과는 달리 대나무 숲이 펼쳐진다. 남구 무거동에서 중구 태화동에 걸쳐 태화강을 따라 4.3㎞, 약 십리에 걸쳐 자란다고 '십리대숲'이라 부른다. 폭은 20∼30m이고 전체면적은 약 29만m²이다.
대밭은 언제 심어 가꾼 숲일까?. 첫 기록은 고려 명종(1171~97)때의 시인 김극기의 태화루 서시(序詩) 내용 중 ‘남금녹점파(南襟綠簟波)’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점(簟)은 대갓을 점립이라고 할 때처럼 대나무로 해석이 가능하여 이때 벌써 태화강에 대나무가 자라지 않았나 추정해 볼 수 있다. 이후 영조 25년(1749) 울산의 최초 읍지인 학성지(鶴城誌)에는 '오산 만회정 주변에 대밭이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오산은 대숲의 서쪽 입구 약간 높은 언덕이다. 자라(鰲)의 형상을 닮았다는 오산은 예부터 숲과 강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조선 중기 부사를 지낸 박취문(1617∼1690)이 말년에 낙향하여 지은 정자가 만회정이다. 이를 미루어 보아 꽤 오래전부터 태화강 둔치에는 대숲이 형성돼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지금의 대나무 숲이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지 않는다. 태화강은 강 길이가 짧아 예부터 홍수가 잦았다. 일제강점기에 큰 홍수로 인해 태화강변의 전답들이 쓸려 내려가 모래밭으로 변했을 때, 한 일본인이 헐값에 사들여 대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후 주민들도 앞 다투어 대나무를 심음으로써 오늘 대숲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한때 주택지로 개발될 위기도 있었으나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숲을 보호하여 오늘날 울산 12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숲을 이루는 대나무의 종류는 왕대와 죽순대(맹종죽)가 많고 이대나 솜대도 일부 섞여 있다. 숲 안에는 마주 오는 사람이 비켜갈 정도의 폭으로 산책길을 고불고불하게 만들어 놨다. 자라는 대나무는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 친근하고 안정감을 준다. 매끈한 연초록 줄기가 빽빽하게 숲을 채우고 있다. 위를 쳐다보면 산들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댓잎이 정겹다.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좋다. 죽순이 여기저기서 돋아나는 봄날은 힘찬 생명의 고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여름날의 대숲은 바깥 온도가 아무리 올라가도 숲 안으로 들어서면 서늘한 느낌이 온다. 가을의 대숲은 높아진 하늘만큼이나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대나무 고유의 피톤치드와 살랑대는 잎사귀에서 음이온을 풍부하게 내 보내 머리를 맑게 하고 심신을 안정시켜준다. 겨울날 눈 내리는 대밭의 풍광도 일품이다. 댓잎마다 소복소복 눈이 쌓이면 고고하고 더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설죽도雪竹圖를 즐겨 그린 것 같다. 산책로를 따라 편의시설도 완벽하다. 곳곳에 벤치가 있고 띄엄띄엄 죽림욕장을 마련, 평상을 놓아 뒀다. 재미있는 시설이 하나 있다. ‘건강더하기 뱃살빼기’시설이다. 허리둘레 별로 대나무 막대를 세워 간격을 달리한 사이를 지나가게 만들었다. 뱃살에 걸려 예상한 간격을 못 지나가면 허탈해 하는 중년의 모습들이 재미있다. 십리대숲 전체를 보려면 대숲의 중간쯤에 강 건너편에 있는 태화강 전망대로 가서 보는 게 좋다. 태화강을 건너던 옛 나루를 재현했다는 작은 선착장에서 1천원으로 전망대로 건너 갈 수 있다.
대나무는 땅속줄기(지하경)의 마디에 있는 곁눈이 자라 40~50일 만에 15~6m 높이에 이른다. 이후 조금씩 자라기도 하나 1∼2년 후에는 완전한 성죽(成竹)이 되어 죽을 때까지 그대로 있다. 자람 속도는 매우 빨라 하루에 1m 이상 자라기도 한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떼지 않으면 자람이 보일 정도라고 한다. 꼭대기의 생장점에서 주로 자라나 마디마다에도 늘어나는 세포가 있어서 자람을 보태준다.
우리는 그냥 대나무라고 하지만 나무인지 풀인지는 논란이 있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저리하고도 사계절 늘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윤선도의〈오우가〉‘죽(竹)’에 실린 노래다. 대나무가 풀인지 나무인지는 글 읽기에 이골이 난 4백여 년 전의 대학자나 지금의 우리나 여전히 헷갈리게 만든다. 대나무는 60~120년에 한 번씩 일제히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나면 벼나 보리처럼 말라 죽어버린다. 보통의 나무가 매년 꽃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나무 꽃이 피면 ‘개화병(開花病)’이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꽃을 피우고 병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나무는 대나무 말고는 없을 것이다. 또 부름켜가 없어서 지름이 굵어지지 않고 속이 비었으며, 죽순에서 한번 키가 커지고 나면 다시는 자라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보아서는 틀림없는 풀이다. 한편 매년 지상부가 죽어버리는 풀과는 달리 대나무는 수십 년을 살아 있으며, 높이 자라고 단단한 목질부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는 점은 나무의 특성과 일치한다. 따라서 식물학적인 기준으로 보면 대나무는 풀이고, 베어서 이용하는 측면에서 보면 나무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얄미운 영국인들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대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빵빵하고 터지는 소리를 ‘밤푸’로 들은 그들은 대나무를 두고 ‘밤부(bamboo)’라는 영어 이름을 만들었다. 우리의 세시풍속에도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대나무를 태우면 큰 소리에 놀라 귀신들이 도망갔다고 한다.
찾아가려면...
위치 : 울산시 중구 태화동 십리대숲
KTX울산역, 울산고속버스터미널,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태화동정류장까지 시내버스, 40~50분 소요, 정류장에서 도보로 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