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인구 1천만에 이른다. 수도권을 합치면 인구의 절반인 2천5백만이 몰려있다. 집을 나서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들어가 버린다. 사람냄새가 덜하고 금방 찾아 갈 수 있는 자연의 숲이 없을까?. 서울은 이런 공간이 있다. 전철역과 이어져 있는 조선왕조의 궁궐이다. 시청역 덕수궁, 경복궁역 경복궁, 안국역 창덕궁, 혜화역 창경궁이 사철 내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궁궐이나 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가장 많이 잘 간직하고 있는 창덕궁 후원의 숲을 찾아가 보자.
궁궐이라면 웅장한 건물과 함께 이에 얽힌 역사 이야기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궁궐의 어떤 건물보다 훨씬 역사 오래된 고목나무도 있다는 사실을 흔히 지나쳐 버린다.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천년을 훌쩍 넘게, 그것도 한 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않는 자람의 특성상 조선왕조가 겪은 수많은 영욕을 그들은 알고 있다. 창덕궁은 우리가 익숙한 평수로 알아보면 약 14만3천5백 평(434,877m2)이고 후원이 2/3쯤 되는 10여 만 평이다. 150종이 넘는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며 느티나무, 갈참나무를 비롯한 참나무, 주목, 회화나무, 음나무, 향나무, 뽕나무, 밤나무, 은행나무, 매화나무, 다래나무 등의 수백 년 된 고목나무가 섞여있다.
창덕궁 정문의 돈화문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고목나무는 회화나무다. 왼편 금호문과 이어진 행랑 앞으로 4그루와 금천 주변의 4그루 모두 천연기념물 472호로 지정되어 있고 나이는 250~400년에 이른다. 옛 중국에서는 회화나무 아래서 고위 관리 들이 정사를 논했다는 예에 따라 심은 것이다. 금천교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둘레 세 아름에 이르는 느티나무 고목이 버티고 있다. 나이가 무려 670년에 이르니 고려 말부터 자라는 셈이다. 창덕궁 곳곳에는 40여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자랄 만큼 고목이 가장 많은 나무다. 안으로 들어가 잠시 인정전 앞에 서 본다. 왕이 공식 행사를 하는 곳, 오늘날 청와대 본관과 같은 곳이다. 고개를 들어 용마루를 보면 5개의 꽃이 그려져 있다. 자두나무 꽃이다. 옛 이름은 오얏인데, 한자로 이(李)라고 한다. 조선이 이씨의 왕조이니 오얏은 바로 조선왕조의 대표 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오얏 꽃을 귀하게 생각하고 문양에 넣은 것은 조선조 말의 대한제국 때이다.
되돌아 나와 동쪽으로 계속가면 낙선재를 옆으로 끼고 약간 고갯길이 되면서 만나는 빈터가 후원 입구다. 입장료도 따로 받는다. 옆의 창경궁 담장을 따라 난 길을 들어가다 좌우에 지금쯤 특별히 익어가는 열매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쉬나무 열매다. 옛 사람들이 밤에 불을 켤 수 있는 기름을 짜던 씨앗이 이 열매 속에 들어있다. 이 일대는 왕세자가 머물던 동궁과 가까운 곳이다. 특히 쉬나무가 많은 이유는, 왕세자는 밤에 불 켜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 고갯길을 넘어가면 네모 연못과 몇 채의 건물들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다. 궁궐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경관이 아름답다는 부용지 일원이다. 앞 쪽의 부용정, 건너편의 주합루, 옆의 영화당 건물이 있다. 영화당에 임금님이 앉고 앞에 펼쳐지는 넓은 공간에 장막을 치고 기념식이나 과거시험도 봤다는 곳이다. 마당에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 고목이 보이고 남쪽 언덕의 숲에는 궁궐에서 가장 굵은 주목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목은 나무 자체의 쓰임도 많지만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는 특성이 임금님의 장수를 기원한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서 주목(朱木)의 붉은 색은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뜻이 있으니 궁궐에 심을 만하다. 다시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왼편에 통 돌로 깍은 불로문(不老門)이 보인다. 늙지 않는다고 하니 사람들은 앞에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옆의 애련지를 지나 들어갈수록 후원의 숲은 점점 더 깊어진다. 창경궁 담장과 붙어 자라는 커다란 고목나무는 천연기념물 471호 뽕나무다. 나이 약 400살에 이른다. 옛날 궁궐에는 뽕나무를 많이 심었다. 세종 때의 기록으로는 창덕궁에만 1천여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누에를 키워 비단을 짜는 일은 귀중한 산업이었다. 나라에서 장려하기 위하여 왕비가 시범을 보인 친잠례(親蠶禮)행사의 흔적이 지금의 뽕나무다.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우리나라 지도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자그마한 연못, 관람지(觀纜池)을 만난다. 연못 건너편에 자라는 커다란 나무는 밤나무 고목이다. 귀중한 식량으로 쓰였던 밤나무 심기를 장려하기 위하여 뽕나무처럼 궁궐에 많이 심었다. 관람지 끝에는 창덕궁의 여러 정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8각 지붕의 존덕정이 자리 잡았다. 정조임금이 좋아했다는 정자이다. 뒤쪽으로 엄청 큰 은행나무 고목이 당당하게 서 있다. 나이 360년, 16대 임금 인조 때쯤부터 자란 셈이다. 공자님이 제자를 가르쳤다는 행단(杏壇)과 관련이 있다. 학문을 숭상하자는 의미로 심었던 것 같다.
후원의 핵심은 여기까지이다. 시간이 바쁘고 다리가 아프다면 되돌아 나가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무언가 빠트린 기분을 싫어한다면 조금 경사가 있는 숲길을 걸어서 산 넘어 옥류천(玉流川)을 갔다와야한다. 존덕정에서 약 500m쯤의 거리다. 널찍한 바위에 홈을 파고 작은 폭포를 만들어 임금이 신하들과 술잔을 띄우고 간단한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주변에 직경 한 뼘 남짓한 주목이 눈에 많이 띈다. 되돌아 나올 때 능선에 자리한 취규정이란 정자 옆으로 내려오면 연경당과 마주친다. 단청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인데 23대 순조임금의 맏아들 효명세자가 아버지가 편안하게 쉬시라고 지은 집이다. 사방이 완전히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특히 일제 강점기에 심은 칠엽수가 이제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이 일본이라는 점이 궁궐에는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다. 다시 고개를 넘어 한참을 내려오면 봉모당이라는 건물 앞에 버티고 있는, 용트림으로 비틀어진 향나무 고목 한 그루가 궁궐 답사의 마지막 이별장소다. 이 향나무는 나이 750년, 창덕궁의 가장 오래된 터줏대감이다. 고려 24대 원종임금 때쯤 태어났으니 조성왕조가 건국되기 한참 이전부터 있던 나무다. 대체로 궁궐이나 향교·서원의 향나무는 제사 때 쓰기 위하여 심은 나무 들이다. 이렇게 창덕궁의 관람로를 따라 주요 고목나무를 돌아보는 데는 1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린다.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와 나무를 연계시켜간다면 후원의 숲은 더욱 의미가 있다.
창덕궁 후원은 제한관람이라 하여 엄격한 통제 하에 해설사를 따라 다니면서 주로 정자 위주의 관람을 해야 한다. 다만 봄가을 두 번에 걸쳐 일정기간 자유 관람을 하는데, 올해는 10월17일부터 내달 5일까지가 바로 그 기간이다. 또 입장료 할인도 있다고 한다. 창덕궁 후원의 숲을 둘러보려면 지금이 적기이다.
찾아가려면...
위치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약 300m
관람시간과 요금 : 계절 따라 관람시간이 다르며 전각 지역과 후원 지역은 관람요금도 다르고 체계도 매우 복잡하다. 창덕궁 홈피(www.cdg.go.kr/)를 반드시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