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초순, 늦은 저녁에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신문 기자다. 나무 문화재 관련 일을 하다 보니 몇몇 신문사 문화부기자들과는 알음이 있다.
‘새로 복원한 광화문 현판이 쩍 갈라졌는데 원인이 뭘까요?’
사실 기자들과의 통화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기사를 쓰기위한 그들의 노력과 정보력은 대단하다.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들어 나름대로 판단하고 줄거리를 만든 다음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과정에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취재한 내용을 보면 깊이와 전문성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광화문 현판 관련 내용을 먼저 알고 있지 않았던 터라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건 너무나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건조가 덜된 나무로 현판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단정했다.
이런 문화재 관련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웬 전문가가 그렇게 많은지 원인진단은 구구각색(區區各色)이다. 우선은 원래 사용하기로 한 금강송 대신에 일반 소나무를 썼기 때문에 갈라졌다는 주장이다. 금강송은 백두대간 일원에 자라는 질 좋은 소나무를 말하며 일단 벌채를 한 상태에서는 일반 소나무와 구별은 불가능하다. 갈라진 현판에 사용한 소나무는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금강송이 맞으며 설령 일반 소나무라고 하더라도 금강송이냐 일반 소나무냐가 갈라짐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다음은 소나무 현판은 태생적으로 갈라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덕수궁, 대한문 등 지금의 현판을 보면 대부분 갈라져 있으니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광화문 현판의 갈라짐은 수종 특성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그런 정도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아예 ‘쩍’ 갈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광화문 현판의 갈라짐은 수종 탓도 목재란 재료의 고유 특성 탓도 아닌 건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화문의 역사적인 흔적부터 잠시 되돌아보고 좀 더 구체적으로 원인을 찾아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후, 1864년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하지만 잠시였다. 1927년 일제는 광화문을 해체하여 경복궁의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버린다. 한국전쟁으로 다시 불타버린 후, 1968년에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했다. 2006년 정부는 고증을 거쳐 제대로 된 목조 광화문을 다시 짓기로 하고 공사에 착수하여 2010년 8월 15일에 완공했다. 4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문화재 복원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그나마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행사에 맞추어 예정 기간보다 몇 달 준공을 앞당겼다고 한다. 성대한 준공식을 마치고 불과 3개월 남짓 지난 11월 초의 일이다. 한 야당 국회의원이 광화문의 얼굴인 현판의 곳곳에 크고 작은 갈라짐이 생긴 것을 폭로하면서 논란이 뜨거워졌다. 현판은 나무 판 아홉 개를 이어 붙인 가로 폭 3.0미터, 높이 1.3미터, 두께 5.5센티미터의 크기이고 무게로 따져도 140킬로그램에 이른다.
이렇게 엄청난 크기의 두꺼운 현판을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나무판자의 건조 상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완벽하게 건조해야만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당시의 현판 제작 과정을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준공식을 하기 두 달 조금 앞선 5월말이 되어서야 통나무를 켜서 현판 만들 준비에 들어간다. 현판에 사용할 나무는 이 사업을 일괄적으로 맡고 있던 대목장이 약 5년 전에 벌채하여 자기 회사 창고에 보관하던 금강송을 쓰기로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햇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건조가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통나무는 웬만큼 오래되어도 가운데는 거의 마르지 않아 생나무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런 일의 최종 확인은 목재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임산공학과라는 전문학과가 국립대학마다 설치되어 있다. 관련 전공 학자만도 오십여 명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청은 ‘전통을 지키는 장인’들의 말만 믿는 것이다. 자기 재임 기간에 완공하여 그 알량한 이름 석 자를 남기는데 혈안이 된 고위 공직자들에게, 문화재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복원해야 한다고 설득을 할 수 있는 어른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을 주관하는 실무 공무원들로서야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모시고 있는 상관의 비위에 맞게 단기간에 해치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꼭 절대로 높은 분의 임기에 맞추어 준공을 해야 한다면 판자 상태로도 2~3년씩이나 걸리는 천연건조 대신에 기계에 넣어 건조하는 인공건조 방법을 쓰면 된다. 광화문 현판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2주 남짓이면 나중에 갈라지지 않게 건조할 수 있어서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가구나 목제품은 거의 대부분 이와 같은 인공건조를 한다. 한마디로 광화문 현판은 생나무 판재에다 ‘광화문’이란 글씨를 새기고 준공 날짜에 맞추어 현판을 걸었다. 갈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매스컴에 연일 보도되고 국민의 여론이 나빠지자 문화재청에서는 ‘현판제작위원회’를 구성하고 현판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장인 중심으로 해오던 제작 과정에서 탈피하여 나를 포함한 목재과학자를 다수 참가시키고 나무 선정부터 건조까지 모든 과정을 과학적인 기준과 원칙에 따라 준비해가고 있다.
우리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한번 크게 혼 줄이 난 문화재청에서는 제작 과정 한 단계 한 단계마다 너무 신중하다. 현판 제작을 다시 시작하고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직 진행형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못되면 흔히 반면교사로 삼아서 다음은 실패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광화문 현판 사건 이후에도 꼭 같은 일이 숭례문 복원에서도 여전히 반복됐다. 짧은 기간을 먼저 정해두고 거기에 맞추는 문화재 복원 방식은 복원이 아니라 파괴이며 후손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더욱이 권력자의 임기에 맞추려는 복원 기획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