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리나무
일본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했다가 처음으로 북한학자와 만났다. 당시는 비교적 남북관계가 원만하던 시절이라 긴장은 덜 했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공통의 관심사인 전공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같은 말을 쓰는 민족끼리인데도 대화중에 내가 모르는 나무이름이 튀어 나온다. 결국 외국인과 이야기 할 때처럼 식물세계의 공통어인 학명(學名)으로 다시 확인해야 만 완벽한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반세기가 넘은 남과 북의 분단이 계속되면서 민족의 동질성이 차츰 멀어진다는 지적은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한다. 크고 작은 생활 문화의 차이도 수 없어서 문제가 많지만 특히 언어의 쓰임새 차이는 심각하다. 일상생활용어는 물론 나무이름이라는 전문영역에서도 이렇게 남북학자가 만나 우리말로 통하지 않는다는 현실은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연구실로 돌아와서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간행한 <식물원색도감>으로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았다. 우선 나무의 자라는 모습이나 잎이나 꽃 및 열매의 특징을 살려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남북한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보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가로수로 흔히 만나는 플라타너스의 우리 이름은 버즘나무다. 얇은 껍질이 벗겨지는 모습이 피부에 생기는 버짐과 닮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북한은 껍질이 아니라 열매를 봤다. 잎 진 가을날 탁구공보다 조금 작은 동그란 열매가 긴 열매자루에 줄줄이 매달려 있다. 그 모습이 귀여운 방울을 연상한다하여 북한이름은 방울나무다. 우리의 버즘나무는 하필이면 나무에다 보기 싫은 피부병의 일종인 버짐을 연상하는 이름을 붙였나는 비판 의견이 많다. 쥐똥나무는 가을에 새까만 작은 열매가 달리는데, 그 모습이 쥐똥을 연상한다고 붙인 우리 이름이다. 북한 역시 열매의 특징을 살려 이름을 붙였으나, 어감도 좋고 귀여운 상상을 할 수 있는 검정알나무라고 했다. 쥐는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는 동물의 대표인데, 그도 모자라 배설물을 예쁜 나무의 이름으로 정했으니 비판 받을 만하다. 외래어가 들어가는 이름은 리기다소나무를 세잎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를 가는잎소나무, 메타세쿼이아를 수삼나무, 히말라야시다를 설송 등과 같이 우리말로 바꾸었다. 왕벚나무의 자생지를 두고 일본이라는 둥 제주도라는 둥 다툼이 있는데 북한은 이에 쐐기를 박듯이 아예 제주벗나무라고 했다. 중국, 일본 등 우리 나무이름에는 흔히 사용한 나라이름 접두어를 북한은 의도적으로 피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중국단풍은 세갈래단풍, 중국굴피나무는 풍양나무, 일본잎갈나무는 창성이깔나무, 일본목련은 황목련등이다. 그 외에도 곰딸기, 까마귀밥나무, 박쥐나무, 호랑버들 등 동물이름을 접두어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개가 들어간 이름은 모두 바꿔 버렸다. 어느 날 김일성 주석은 '우리나라 식물들 가운데는 쥐똥나무뿐만 아니라 개똥나무, 개살구나무, 개오동나무를 비롯하여 이름을 천하게 부르는 식물이 많은데 그런 이름은 다 고쳐야 합니다'고 하고 직접 개오동나무를 향오동나무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 이후 개다래는 말다래, 개머루는 돌머루, 개비자나무는 좀비자나무. 개벚지나무는 별벗나무, 개산초는 사철초피나무, 개살구나무는 산살구나무, 개옻나무는 털옻나무 등으로 완벽하게 ‘개’는 없애버렸다. 다만 개나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 나리꽃보다 좀 작고 덜 예쁘다는 뜻으로 개나리가 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북한은 나리꽃과는 관련이 없는 고유의 이름을 본 것 같다. 백송을 흰소나무, 오죽을 검은대, 유동을 기름오동나무 등으로 한자이름은 순수 우리말로 바꾸었다. 그러나 골담초(骨擔草)나 주목(朱木)등과 같이 한자명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많아 일정하지 않다.
이렇게 북한 나무 이름 중 유래를 찾을 수 있고 자기들 나름대로의 원칙을 알 수 있으나 짐작도 할 수 없는 생소한 이름도 많다. 예를 들어 박태기나무는 구슬꽃나무, 괴불나무는 아귀꽃나무, 백당나무는 접시꽃나무, 송악은 담장나무라고 했다. 귀룽나무는 구름나무, 식나무는 넙적나무, 채진목은 독요나무, 산초나무는 분지나무, 백량금은 선꽃나무, 산사나무는 찔광나무, 자두나무는 추리나무 등도 짐작이 쉽지 않다. 또 우리 나무와 이름이 같으나 전혀 다른 나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어서 더욱 혼란스럽다. 산벚나무를 북한에서는 큰산벗나무, 북한의 산벗나무는 우리의 개벚나무를 말한다. 참나무도 우리는 참나무종류 전체를 포괄적으로 말할 때 쓰나 북한에서는 상수리나무라는 특정 수종을 참나무라 한다. 그 외 짐작은 할 수 있으나 표기가 다른 이름은 수없이 많다. 벗나무(벚나무), 주염나무(주엽나무), 노가지나무(노간주나무), 메역순나무(미역줄나무), 산배나무(돌배나무)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이상 목본식물만 대상으로 잠깐 훑어본 남북한의 이름차이도 서로 대화가 되지 않을 만큼 심각한데, 초본식물을 포함하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우리도 좋은 이름도 많지만 북한은 오랫동안 한글전용을 해온 탓에 대체로 순수 우리말의 깊을 뜻을 살려낸 아름다운 이름이 더 많다. 언젠가 남북의 식물학자들이 마주앉아 식물이름 통일만이라도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