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이름, 어디서 왔나?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면 이름부터 먼저 대고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이름을 알아야 만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나무의 이름을 아는 것은 나무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우리 선조들이 제멋대로 나무이름을 붙인 것 같지만 나름대로 기준이 있다. 나무 전체의 모양, 나무의 쓰임새, 껍질·잎·꽃·열매, 자라는 곳 등 갖가지 특징을 살려서 이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름을 붙일 당시는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전이어서 말이 바뀌고 뜻이 변한 경우가 많으므로 정확한 유래를 찾기가 어렵다. 물론 1천여 종의 우리 나무 중 유래를 짐작 할 수 있는 나무는 1백여 종 남짓하다. 그러나 이런 이름들은 나무에 얽힌 문화를 짐작할 수 있고 나무와 친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대표적인 나무들의 이름 유래를 찾아본다.
나무의 모양으로는 나뭇가지가 돌려나기하고 거의 직각으로 퍼져 층층을 이룬다하여 층층나무, 나뭇가지가 정확하게 3개씩 갈라지므로 삼지(三枝)닥나무다. 합다리나무는 줄기가 곧고 길며 잿빛 껍질을 가지고 있어서 학의 다리나무, 즉 학다리나무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녹나무는 어린 나뭇가지가 녹색이므로 녹(綠)나무가 됐다. 모양이 웅장하고 크다는 뜻으로 왕(王)이란 접두어가 붙은 이름이 많은데 왕버들, 왕머루, 왕팽나무, 왕대 등의 예가 있다.
나무 자체의 쓰임새로 붙여진 이름은 대팻집에 쓰인 대팻집나무, 참빗의 살을 만든 참빗살나무, 조리를 만드는데 사용한 조릿대 등이다. 나무껍질의 용도로 붙여진 이름을 보면 껍질을 벗겨 삿자리 등으로 이용한 피(皮)나무, 껍질을 짓이겨 감탕(옛 접착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감탕나무 등이다. 이정표로 쓰인 나무에는 5리 및 10리마다 심었다는 오리나무와 시무나무가 있다. 색깔로 붙여진 이름에는 거의 흰 빛의 얼룩얼룩한 껍질을 갖는 백송(白松), 검은빛 껍질을 가진 흑피목(黑皮木)에서 검은 피나무로 되고 다시 변하여 된 가문비나무, 회갈색의 흰 껍질을 갖는다는 뜻에서 분피(粉皮)나무가 변한 분비나무, 껍질이 검은 소나무라는 뜻의 흑송(黑松)이 검솔을 거쳐 곰솔, 붉은 껍질로 대표되는 주목(朱木), 안 껍질이 짙은 황색을 나타내는 황벽(黃蘗)나무, 노각나무는 줄기가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껍질을 갖는다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됐다.
잎 모양의 특징에 따라 붙여진 이름은 잎이 갈라지는 모양이 손가락 8개 달린 손바닥 같은 팔손이, 7개로 잎이 갈라지는 칠엽수(七葉樹), 잎이 5개로 각 각 갈라지고 껍질을 약제로 쓰는 오가피(五加皮)에서 오갈피나무, 고춧잎을 닮은 잎과 고추 꽃과 비슷한 꽃이 피는 고추나무, 바늘잎이 좌우로 나란히 달린 모양이 한자의 아닐 비(非)자를 닮았다하여 비자(榧子)나무다. 꽃이 피었을 때의 생김새에 따라 붙인 이름도 많다. 백당나무 꽃이 가지 끝마다 피어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 하얀 꽃 두름이 마치 작은 단(壇)을 이루는 것 같다. 그래서 백단(白壇)나무로 불리다가 백당나무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쌀밥을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꽃이 피는 이팝나무, 잔잔한 흰 꽃이 조밥을 연상시키는 조팝나무, 새하얀 꽃핀 모양을 밤에 보면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야광(夜光)나무 등이 있다. 연꽃을 닮은 꽃이 피는 나무란 뜻의 목련(木蓮)이 있다. 열매 모양에서 유래된 이름도 많으며 먹는 열매로서는 살구모양인데 은빛이라는 뜻의 은행(銀杏)나무, 참외모양의 열매가 나무에 달린다 하여 목과(木瓜)나무가 변한 모과나무, 자도(紫桃)는 자줏빛 복숭아모양의 열매가 달리는 자도나무가 변하여 자두나무가 됐다.
가시의 특징으로 붙여진 이름으로는 가시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휘어있어 실이 잘 걸리는 나무란 실거리나무, 가시모양이 엄하게 생겼다는 음(엄嚴)나무, 탁엽이 변하여 매발톱 같은 날카로운 가시가 3개씩 달린 매발톱나무, 잎의 가장자리가 단단한 침으로 변하여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등긁이로 쓴다하여 호랑가시나무다. 가시가 없어도 가시나무란 이름의 나무가 있다. 임금님 행차의 앞에서 깃대를 매는 긴 막대기를 가서봉(哥舒棒)이라 하며 중국에서는 무술에 쓰는 봉을 말하기도 한다. 가시나무는 이런 봉을 비롯한 창을 만드는 나무로 흔히 사용하였으므로 가서목-가서나무-가시나무로 변한 것이다. 가시목(加時木)이라고 쓸 때도 있다.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잎에서 역한 누린내가 나는 누리장나무, 나무에서 향기가 나는 향(香)나무, 익는 열매에서 신맛·단맛·쓴맛·짠맛·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이 섞여 있다는 의미로 오미자(五味子)나무다. 또 돈나무는 우리 모두 좋아하는 ‘돈’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열매가 겨우 내내 끈적끈적하고 달큼한 액체를 분비하므로 각종 곤충과 파리 떼가 날아들어 지저분하기 때문에 똥나무라 하다가 돈나무가 됐다. 물푸레나무는 잔가지를 꺾어 물속에 넣으면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다. 잎이 두꺼워 불 속에 던져 넣으면 ‘꽝꽝’ 소리가 난다는 꽝꽝나무, 껍질을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는 자작나무가 있다. 오랑캐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라는 호도(胡桃)에서 호두나무, 서목(西木)에서 서나무(서어나무), 소서목(小西木)에서 소사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마시면 뼈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고로쇠나무, 아름다움에 취하여 머뭇거린다는 척촉(躑躅)이 변한 철쭉 등이 있다. 흔히 말하는 소나무는 송목(松木)이 송나무로 변하고 다시 소나무로 된 것으로 보인다. 괴화(槐花)는 회화나무의 중국이름인데 중국발음 화이화(huáihuā)에서 따온 것으로 짐작한다. 대나무는 원산지인 동남아에서 ‘덱(tek)’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대나무가 됐다는 것이다. 이름에 초(草)나 풀이 들어가지만 실제는 나무인 것으로 인동초, 골담초, 만병초, 죽절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