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충나무 잎 속의 ‘거미줄’
나무이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따분하고 귀찮고 번거롭다. 수많은 이름을 외워야하고 비슷비슷한 특징을 일일이 대조해 가면서 확인해야 한다. 의지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래도 독특한 특징을 갖는 나무들은 쉽게 기억할 수 있어서 초보자도 금방 친숙해 질 수 있어서 반갑다. 껍질이 시커멓게 그물 모양으로 깊게 갈라지는 감나무나 말채나무, 표면이 매끄럽고 얇은 배롱나무나 노각나무, 하얗거나 약간 푸른빛이 나는 자작나무나 사시나무 등이 있다. 잎으로는 가장자리가 깊게 패인 산사나무, 두텁고 날카로운 가시까지 붙어 있는 호랑가시나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두충나무도 특별한 잎을 가진다. 싱싱한 잎을 가로로 찢어보면 거미줄 모양의 점액질의 하얀 실을 볼 수 있다. 다른 나무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므로 두충나무를 가장 손쉽게 찾아내는 방법이다. 구타페르카(guttapercha)라는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잎 뿐 아니라 씨, 뿌리, 속껍질에도 있다. 원래 이 물질은 열대 아시아에 자라는 사포타과(Sapotaceae)의 수목에서 채취하여 상품화되기도 했다. 정제하여 건조시키면 60℃이상에서 말랑말랑해지고 상온에서는 단단해지는 고무성질을 갖게 되므로 한때 전선의 절연체로 쓰인 적도 있다고 한다. 온대지방에서 두충나무만 유일하게 구타페르카를 포함하고 있으나 함량이 약 6.5%에 불과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다. 두충나무의 학명은 ‘Eucommia ulmoides’인데 속명(屬名) Eucommia는 질 좋은 고무질을 함유한다는 뜻이고, 종명(種名) ulmoides는 느릅나무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물론 식물학적으로는 느릅나무와 과(科)가 다른 별개의 나무지만 느릅나무 속껍질과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어서 이런 학명이 붙었다. 영어 이름도 ‘단단한 고무나무(hardy rubber tree)’다.
내가 두충나무와 처음 만난 것은 서울 홍릉에 있는 산림과학원 구내 수목원에서다. 20대 후반의 젊은 날, 몇 군데 방황하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비정규직 연구원으로의 첫 출발을 내디뎠다. 업무의 생소함과 공무원 사회의 권위적인 구조 속에 갇혀버린 생활에서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대상은 나무였다. 자그마한 수목원이었지만 1926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곳이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울적할 때 틈틈이 만난 나무 중에 우연히 잎사귀를 하나 찢었더니 거미줄이 나타난다. 팻말을 보니 두충나무다. 매일 거의 같은 일에 매달리는 초보 연구원으로서 나는 업무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나무 연구로 대단한 각광을 받을 일도 없을 것 같고, 언제 정규직이 될지도 불안했다. 타성적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을 이어갈 뿐이었다. 마치 거미줄에 묶여 발버둥치는 나비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있을 때다. 나무 잎사귀 안에도 거미줄이 들어 있음이 너무 신기했다. 다행히 두충나무 잎 속 거미줄은 살짝만 건드려도 끊겨버리니 발버둥 쳐도 나올 수 없는 진짜 나비의 신세가 아니라는 것으로 만족했다.
중국 중서부가 원산인 두충나무는 높이 20미터에 둘레 한 아름정도 자라는 큰 활엽수다. 손바닥크기의 긴 타원형 잎은 약간 짙은 초록색에 잎맥이 뚜렷하며 납작한 날개열매의 모습은 물푸레나무를 닮았다. 두충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 알려진 것은 고려 문종 33년(1079) 7월 임금의 숙환인 풍비증(風痹證)을 치료하기 위하여 송나라 노주(潞州)에서 나온 ‘두중(杜仲)’을 수입해 오면서다. 원래 중국의 두중이란 사람이 이 나무껍질을 약으로 먹고 도를 깨우쳤다하여 두중나무가 됐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두충나무로 표기가 변한 것 같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벌써 조선 초에 심고 가꾼 것으로 짐작되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두충나무의 구타페르카 성분은 약리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아주 옛날부터 한약제로 쓰였다. 속껍질을 벗겨 쪄서 햇빛에 말린 것을 두충이라 하는데, 강장제, 진통제, 관절염 등의 증상에 이용한다. 잎으로 만든 두충차는 혈압강하제로 쓰이기도 한다. 7~80년대에 한때 우리나라에도 두충나무의 약효가 과장 선전되어 널리 심기도 했으나 지금은 거의 심지 않는다. 실제로 두충나무가 일반 농가에 보급된 것은 산림과학원의 두충나무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한 아름이 넘는 크기로 자란 암수 한 그루씩의 두충나무 고목이 우리나라 모든 두충나무의 어미가 됐다. 건강식품도 유행을 탄다. 두충나무에 열광하던 사람들은 산뽕나무와 느릅나무를 거쳐 지금은 황칠나무가 건강식품 나무의 왕좌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