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과 赤松
20년 8월 9일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을 보다가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을 만든 소나무와 관련하여 몇몇 혼란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정리합니다.
여러 종류의 불상 중에 반가사유상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한쪽 다리를 다른 쪽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반가半跏에 얼굴이 마치 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사유思惟를 붙여 반가사유상이다. 예술적 값어치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우리의 국보 83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일본 교토의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이다. 둘은 6C경이라는 제작시기도 거의 같고 쌍둥이라고 할 만큼 거의 완벽하게 닮았다. 재질은 우리 것은 금동이고 일본 것은 소나무이다.
그런데 유홍준 교수에 따르면 미술사가 들은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을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것인지 일본에서 제작한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제작설을 주장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소나무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가장 주요한 근거로 들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이 반가사유상은 한반도 제작설이 더 무게가 실린다고 하며 문외한인 필자가 봐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울러서 나무로 봐서도 일본 제작설을 결코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제작기법이나 역사적인 사실이 제작지 추정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재질이 소나무란 사실은 참고 인자일 뿐이다. 왜냐하면 소나무는 한국과 일본에 모두 분포하며 우리나라가 더 많기는 하지만 일본에도 반가사유상 하나 정도 만들 소나무는 충분히 있다. 소나무는 한반도에만 자란다거나 심지어 울진 지방의 금강소나무를 썼다는 주장까지 있지만 모두 가짜 뉴스이다. 북해도를 제외한 일본 전국에 분포하며 광륭사와 가까운 관서지방에도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한일소나무 분포도 참조>. 참고로 일본 나무불상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750건 중 편백 35%, 비자나무 20%, 계수나무 10%, 느티나무 5%, 벚나무 4%, 녹나무 4% 순이다.
또 반가사유상을 만든 소나무를 특별히 적송赤松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일본소나무와 다른 우리 고유의 소나무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적송은 ‘アカマツ’란 소나무의 일본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우리 조상들이 쓰던 고유의 이름이 아니다. 한일강제병탄 직전인 대한제국 융희 4년(1910) 여름 농상공부대신 조중용이 농상공부 고시9호로 공시한 화한한명和韓漢名 대조표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널리 쓰였고 이제는 우리 국어사전에도 올라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 역사서를 비롯한 우리 문헌 어디에도 적송이란 이름은 쓰지 않았다. 소나무의 우리 옛 이름은 한자로 松 혹은 松木이라 했다. 송은 솔, 송목은 송나무를 거쳐 소나무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