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속의 松柏나무
‘세한도’는 추사가 귀양 온지 5년째인 1844년 그린 최고의 명작으로 꼽는다. 허름한 집 한 채를 두고 앞뒤로 그려진 한 쌍씩 네그루의 나무가 그림의 요체다. 그림설명에 논어 자한편의 ‘세한송백’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였고, 그림의 제목마저 세한도이니 우리는 흔히 집 앞의 두 그루를 소나무, 집 뒤의 두 그루를 잣나무라고 해설한다. 과연 그런가?
먼저 짚고 가야한 부분은 세한도가 실제의 경치를 그린 실경 산수화냐는 것이다. 창문이 동그란 원창(圓窓)으로서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우리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경이 아니고 추사의 마음을 표현한 상상화라고도 한다. 또 옛날 독을 깨어 창문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니 원창을 우리 것이라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자연과학자인 필자가 끼어들 틈새가 없다. 다만 세한도가 실경 산수화라면 무슨 나무일까?라는 전제로 생각해 본다.추사가 귀양 가서 살았던 제주도 대정일대는 바다에 가까운 평지로서 자라는 나무 종류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그것도 세한도의 그림이 모두 바늘잎나무이니 더욱 간단하다. 당시에 주위에서 추사가 만날 수 있는 바늘잎나무는 소나무나 곰솔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잣나무는 제주도에 자라지 않았으며 당시에는 전나무로 알고 있던 구상나무는 한라산 꼭대기 근처에나 있는 나무이다. 지금 제주도에 흔한 삼나무는 일제 강점기 전후에 들어온 나무일 따름이다. 세한도에서 보면 집 앞의 오른쪽 늙은 노목은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비스듬히 자라고 있으며 늘어진 가지 끝의 잎 모양은 짧고 부드러운 맛을 풍긴다. 왼쪽 나무는 나이가 많지 않는 젊은 나무이며 껍질이 세로로 갈라 진 것으로 보이고 줄기도 곧다. 소나무 종류는 노목이 되기 전에는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지 않는다. 이런 특징들은 모두 소나무와 곰솔이 갖는 형태 특징이다. 즉 소나무는 잎이 부드럽고 짧은 반면 곰솔은 잎이 억세고 길다. 따라서 오른 쪽 노목은 소나무, 왼편의 나무는 잎이 촘촘하고 길며 솔잎을 휘어지게 그렸으나 억센 느낌이 그대로 와 닿으니 곰솔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음 집 뒤의 두 나무를 생각해 본다. 원근법이 강조된 그림이 아니므로 실경이라면 나무의 실제 크기를 그대로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집 앞 나무 보다는 더 지름이 가늘고 어린 나무로 볼 수 있다. 작게 그려져 나무의 특징을 찾아내기는 어려우나 줄기가 곧으며, 잎 모양은 상하로 직선 처리하여 집 앞의 젊은 소나무보다도 더 억세게 그려져 있다. 가지 뻗음이 수평인 것은 더 어린 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 뒤의 두 나무는 모두 곰솔로 볼 수 있다. 세한도가 실경 산수화라고 본다면 그림의 주 구성요소인 4그루의 나무들은 늙은 소나무 한 그루와 3그루의 곰솔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동아일보 2011년 1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