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들어서면 문묘의 널찍한 명륜당(明倫堂) 앞마당에 크기가 거의 같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10여m거리로 자라고 있다. 은행나무이외에도 아름드리 회화나무, 느티나무, 말채나무, 단풍나무, 팥배나무 등이 마당의 가장자리를 둘러쌓듯이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입구 쪽의 은행나무인데 나머지 한 그루도 이에 못지 않게 크고 웅장하다. 조선 중종 14년(1519)에 대사성 윤탁이 심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으며 대체로 문묘가 창건된 뒤에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명륜당 남쪽 담과 나란히 이어진 대성전(大成殿)뜰에도 명륜당 은행나무와 크기가 비슷한 2그루의 은행나무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나이나 크기가 거의 비슷한 문묘의 4그루 은행나무중 1그루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옳지않다고 본다. 왕조실록 기록에 보면 선조31년(1597) 10월20일에 성균관에서 관학의 양성에 대해 건의하였는데, '명륜당의 옛터는 절반이나 길로 들어가고 벽송정(碧松亭)의 앞길은 무성한 잡초로 덮여 조석으로 중국의 말이 떼를 지어 행단 아래에서 풀을 뜯어먹고, 중국 군대는 재실 밖에서 떠들썩하여 수 백년 동안 성인을 존숭하고 선비를 양성하던 곳이 이 지경이 되었으므로 식자들은 눈물을 뿌렸다' 하여 임진왜란 때 들어온 중국군의 행패가 이곳 행단(杏壇)에 까지 이르렀음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키가 26m, 줄기의 가슴높이 둘레가 12.1m이며 나이는 약 4백년으로 추정하고 있고 바로 옆의 나무는 둘레가 4.2m 정도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 26.8m, 남북도 27.2m로서 거의 완전한 원뿔모양이다. 이 은행나무의 특징은 원 줄기가 죽은 후 나무 밑에서 7개의 줄기가 자라서 원줄기 크기와 같이 자랐다고 하나 지금은 서로 붙어버려 완전한 큰 하나의 줄기처럼 보인다. 가지의 발달이 왕성하며 더욱이 두 그루가 같이 붙어 있어서 모양새의 웅장함은 명륜당에서 공부하던 옛 유생들의 위엄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듯하다. 문묘의 4그루 모두 수나무로서 열매가 달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날에는 모두 암나무이었는데 열매가 떨어져 냄새가 나고 지저분해져 문묘의 엄숙함에 방해가 되자 수나무가 되어달라는 제사를 올렸더니 모두 수나무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글쎄? 제사 한번에 암수가 뒤바뀔 수 있다면 세상 참 어지러워 질 것 같다. 이 은행나무는 기근(氣根)인지 비정상조직인 혹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나 남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에서 아래로 방망이를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유주(乳柱)라는 것이 달려 있다. 3개의 유주가 같이 달려 있는데 2개는 길이가 길고 하나는 짧다. 다른 가지에 또 한개의 유주가 더 있어서 모두 4개가 있는 셈이다. 유주가 달리는 은행나무는 이것말고도 천연기념물 302호인 의령 유곡면의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화순의 은행나무 등 몇 그루가 도 있으나 모양은 다양하다. 유주는 우리나라 은행나무에서는 흔하지 않으나 일본의 은행나무에서는 아주 흔하고 그 발달도 현저하다. 모양새가 젖 모양이면서 기둥처럼 생겼다하여 유주란 이름이 생겼고 일본에서는 젖이 잘 나지 않은 아낙이 치성을 하는 대상이라고도 한다. 문묘 은행나무의 유주는 젖 모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남성의 심벌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은행나무 이야기 은행나무과 (학명) Ginkgo biloba (영명) Maidenhair Tree (일명) イチヨウ (漢名) 銀杏木, 公孫樹, 鴨脚樹, 白果木 지금으로부터 약 3억5천만년 전, 우리 인류는 태어날 꿈도 꾸지 안았던 아스라이 먼 옛날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어려운 말을 쓴다면 고생대말 페름기에 지구상에 출현 해 중생대에 번성기를 누렸으며, 신생대를 거쳐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다. 그동안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 대부분의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도 의연히 살아남은 은행나무를 우리들은‘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의 가계를 들여다보면 외롭고 쓸쓸하다. 예를 들어 장미과의 식물들은 3천여종이 세계의 어디를 가나 자라고 있을 만큼 자손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데 은행나무는 윗대를 한참 올라가도 여전히 한 종류밖에 없다. 은행나무는 오래 사는 나무로 유명하다. 낙엽송이나 벚나무가 기껏 수 십 년이면 벌써 노인나무가 되어 버리는 것과는 달리 천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위엄이 당당하다. 전국에는 약 8백여 그루의 은행나무 거목이 보호되고 있는데 5백살 정도는 명함도 못 내민다. 일흔을 살면 드물게 오래 살았다 하여 희수(稀壽), 조금 더 살아 일흔 일곱이 되면 정말 축복 받고 기뻐할 나이라 하여 희수(喜壽)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은행나무는 수컷과 암컷의 종자를 함께 심는 것이 좋고 그것도 못 가에 심어야 하는데 이유는 물 속에 비치는 그들의 그림자와 혼인하여 종자를 맺는 까닭이라 하였다. 상징적인 표현이나 은행나무는 암나무와 숫나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서로 마주 보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하는 애틋한 남녀와 비유되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천년 후에 다시 이어진다는 줄거리의 강제규 감독 '은행나무 침대'라는 영화에서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는 플라토닉 러브의 한국적 표현을 보게 된다. 은행이란 이름은 씨가 살구(杏)처럼 생겼으나 은빛이 난다하여 붙인 이름으로 보이고, 때로는 거의 흰빛이므로 백과목, 심어서 종자가 손자대에 가서나 열린다 하여 공손수,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하여 압각수 등 여러 이름이 있다. 은행잎은 독특한 모양새와 가을에 오는 노오란 단풍의 정겨운 정취 때문에 곱게 말린 은행단풍을 연인의 편지에 넣어 보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잎에서 추출한 엑기스로 여러 종류의 신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혈액순환제로 유명한 기넥신, 징코민 등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 외에도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 성인병과 노인성치매, 뇌혈관 및 말초신경장애 등의 치료제로 속속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기술의 미비로 가장 품질이 좋다는 우리는 은행잎은 1차 가공만 하여 수출하고 정작 필요한 약제는 다시 역수입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만 자란다. 그렇다면 본래의 고향은 어디인가? 학자들 중국의 양자강 하구 남쪽에 있는 천목산(天目山)근처일 것이라고 추정만 하고 있다.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짐작만 할 뿐 언제부터 우리의 친근한 나무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오래 살다보니 크기도 엄청나다. 높이 수 십 미터, 지름은 몇 아름이 되게 자란다. 나무 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지며 짧은 가지는 번데기처럼 주름이 잡혀있어서 겨울에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꽃은 봄에 잎과 함께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나무에서 핀다. 바람에 실린 수꽃가루가 암꽃까지 나라가서 수정이 이루어진다. 은행나무 꽃가루는 진기하게도 머리와 짧은 수염 같은 꽁지를 가지고 있어서 '정충이 있다'고 말한다. 동물의 정충처럼 스스로 움직여서 난자를 찾아 갈 수 있다. 살아온 기나긴 역사만큼이나 태고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은행나무이다. 열매는 노랗게 익으며 말랑말랑한 과육은 심한 악취가 난다. 우리가 먹는 것은 종자이고 종자껍질이 은빛이다. 나무를 잘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세포모양이 침엽수재와 거의 같아서 은행나무는 잎이 넓어도 나눌 때 활엽수가 아니고 침엽수에 넣는다. 세포 속에는 독특하게 머리카락 굵기의 1/10정도 되는 작디작은 '보석'이 들어 있다. 수산화칼슘이 주성분인데 현미경아래서 영롱한 빛을 내어 은행나무에 또 하나의 신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나무 색은 연한 황갈색을 띠면서 너무 단단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아 예부터 널리 이용되었다. 바둑판, 가구, 상, 칠기심재 등으로 사용되었고 불상을 비롯한 각종 불구(佛具)에도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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