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번호가 84호로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을 최초로 정비할 때 지정된 나무이니 같은 은행나무라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나무다. 그러나 굵은 가지는 대부분 부러져 버리고 새로 돋아난 가지는 어마어마한 줄기와 조금 균형이 맞지 않는다. 나무의 나이는 천년 세월을 자랑한다. 신라 때 심었다는 전설이 있고 김종직과 이율곡의 문집에 ‘진산(珍山)에 큰 은행나무를 보았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근거로 나무의 굵기를 참고하여 추정한 나이다. 크기는 높이가 24m, 가슴높이의 둘레가 12.9m이다.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21.8m, 남북이 24.1m로서 둘레의 크기에 비하여 수관이 빈약하다. 줄기는 땅위 3m 정도 올라가서 4개로 갈라져서 자라다가 3개는 부러져 나가고 서쪽으로 뻗은 1개만이 남아 있다. 몇 년 전 기록에는 줄기가 썩어서 동굴처럼 비어 있다하였으나 지금은 말끔하게 충전처리가 되어 있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는 지 찾아간 2002년 12월 21일의 한 겨울에도 은행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천년을 살고도 아직 왕성한 생식능력이 있는 이 은행이야 말로 지구상의 어떤 생물체도 생식능력에는 따를 재간이 없을 것이다. 가지가 분질러 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동네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남쪽 가지는 1860-70년 경 바람에 의하여 부러졌는데, 가지의 길이는 30m이었고 이것을 판자로 켠 넓이는 세 사람이 누워서 잘 수 있었다 한다. 그리고 여기서 켠 판자로 3년 동안 밥상을 만들었다 한다. 동북쪽 가지는 이 보다 20여년 뒤 쯤 역시 강한 바람에 부러졌다. 가지 길이가 40m에 이르러 관(棺) 37개 만들어서 부락민이 나누어 가졌다하며, 동쪽 가지는 8·15후 태풍에 부러져 그냥 없어져 버렸다한다. 5백 여 년 전 이 마을에서 살던 오씨(吳氏)의 조상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나무 밑에 정자를 짓고, 은행나무 정자라는 뜻의 행정(杏亭)이라고 불렀다. 현재 낡아 빠진 허름한 정자가 나무 옆에 있으나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곧 무너질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머리가 둔한 아이를 밤중에 나무 밑에 한 시간쯤 세워두면 머리가 좋아진다고도 한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야기 같지는 않고 성적이 시원찮은 자식을 둔 어버이가 지어낸 것 같다. 그 외 잎을 삶아서 먹으면 노인의 기침병이 없어지고, 나무에 정성 들여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나라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소리를 내어 알려준다고도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을 믿는 사람들은 음력 1월 3일 밤 12시에 나무 밑에 모여 새해의 행운을 빌었다고 한다. 옆에는 오씨의 유허비가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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